(FTA블록전쟁)①EU VS 러시아..우크라 사태는 시작일 뿐

EU, 우크라이나와 FTA 협정 '재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FTZ '비준'..역공 개시
유라시아 경제영토 분쟁..美 핵심 변수

입력 : 2014-04-15 오전 10:00:00
[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최근 선진국 간 자유무역협정(FTA)과 지역 동맹이 강화되면서 경제블록 간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졌다. 미국, 유럽연합(EU), 러시아, 아시아, 중남미 등 권역별로 FTA를 동시 다발적으로 추진하면서 이득을 챙기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이다. EU와 러시아는 구소련 연방국을 두고 줄다리기 게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경제권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중국을 견제할 심산이다. 중국은 이에 아시아 경제 동맹으로 맞불을 놨다. 개발도상국들도 질세라 무리짓기에 나섰다. 세계는 지금 경제블록 쌓기 열풍에 빠졌다. <뉴스토마토>는 글로벌 경제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각국의 전략과 전술, 세계 경제블록간의 대립현황을 4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총성 없는 전쟁이 유라시아를 휩쓸었다. 동유럽 경제를 아우르려는 유럽연합(EU)과 구소련의 영광을 재연하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충돌하면서다.
 
크림반도를 접수한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우크라이나와 EU를 옥죄는 가운데 미국과 EU는 경제제재로 역공을 가하고 있다.
 
경제 영토를 선점하기 위한 양측의 싸움은 이제 자유무역협정(FTA)과 관세동맹의 대결로 확장됐다. 그 무대는 둘의 접점에 있는 독립국가연합(CIS)을 비롯한 구소련 출신 국들이다.
 
이 둘의 싸움에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EU의 FTA가 핵심 변수로 부각됐다. 
 
◇EU, 약속의 땅 우크라이나 '선점'..서방, 경제지원 가속화
 
유라시아의 주인이 되기 위한 두 세력의 피할 수없는 전쟁이 본격화됐다.
 
유럽은 경제블록 쌓기 경쟁에서 선취점을 획득했다. 지난해 11월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이 뒤집어엎은 FTA 협상을 재개키로 한 것이다.
 
지난달 21일 EU와 우크라이나는 정치분야 협력협정을 체결하고 오는 11월까지 FTA 협상을 진행키로 했다. 러시아의 갖은 견제 속에서 이루어낸 쾌거다.
 
러시아는 그간 우크라이나에 수출하는 천연가스 가격을 80% 인상하고 가스값 미수금 22억달러를 속히 갚으라고 촉구해왔다. 가스공급을 중단하겠다는 등의 압력도 가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대신 EU를 택한 이유는 국민의 열망과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책 때문이다.
 
EU는 빈사 상태에 빠진 우크라이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우선 110억유로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3일에는 우크라이나 제품에 대한 수입 관세를 철폐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관세 면제로 우크라이나는 연간 4억8700만유로의 혜택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의 자금지원도 따를 예정이다. IMF는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에 최대 180억달러의 구제 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EU가 우크라이나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이 서방과 러시아를 가르는 군사 지정학적 요충지일 뿐 아니라 동유럽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소비시장이기 때문이다. EU가 공급받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도 이 땅을 지난다. 우크라이나를 포섭한 EU에 군사, 경제, 에너지 안보란 세 마리 토끼가 동시에 주어진 셈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선 인근에 군 병력을 배치해 놓은 상태라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동남부 지역에서 친서방 정권에 반기를 드는 시위 또한 이어지고 있는 점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서방측은 이번 반정부 시위의 배후에 러시아 스파이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군 병력이 크림반도 인근 지역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러시아-우크베키스탄 FTZ 비준..집안 단속 '강화' 
 
비록 우크라이나를 눈앞에서 놓치긴 했지만, 러시아는 전력을 가다듬고 EU에 역공을 가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경제 공조를 강화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모스크바타임즈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은 CIS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zone ; FTZ)' 가입 협정을 비준했다. 이로써 우즈벡은 FTZ에 9번째로 가입한 동유럽국이 됐다. 탈(脫) 러시아의 선두주자로 러시아어 대신 키릴 문자를 도입하고 군사동맹도 탈퇴하는 등의 행보를 이어온 우크벡이 돌연 러시아를 택한 것이다. 러시아가 약속한 경제지원과 무역혜택이 컸다는 분석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왼쪽)와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우즈벡 정부)
 
러시아는 또 크림반도를 포섭하는 동시에 에너지 가격을 올리는 등 ‘배신자’ 우크라이나가 고생하는 모습을 본보기 삼아 집안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EU를 선택한 나라는 우크라이나처럼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여기에 각 기관의 경제 보고서 또한 러시아의 경고에 힘을 실었다.
 
러시아 관영통신 이타르타스는 우크라이나 국립과학 연구소의 조사를 인용해 올해 우크라이나의 농업 부문 수출이 전년보다 50%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식료품 수출은 40% 줄어들고 화학과 엔지니어링 부문도 각각 20%씩 위축될 것으로 전망됐다.
 
우크라이나 재무부는 자국 경제 성장률이 올해 3%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고 한국수출입은행은 올해 -2.3%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모두 우크라이나의 지난해 성장률 잠정치인 0~-1%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러시아는 채찍과 함께 당근도 사용했다. 최근 타지키스탄 이주노동자가 발급받는 노동 허가증의 기한을 3년이나 연장해준 것이다. 서방 쪽으로 기우려는 타지키스탄을 붙잡아 두려는 전략이다.
 
이런 가운데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이 러시아를 제 발로 찾아왔다. 러시아와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로 구성된 '관세동맹(customs union ; CU)'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러시아는 또 서방의 개입을 달가워하지 않는 아제르바이잔과 에너지협정을 체결하고 아르메니아와는 군사협정을 맺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꿈꾸던 유라시아 경제 대국이 도래할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美-EU FTA, 유라시아 알력 다툼에 주요 '변수'
 
양측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지는 동안 EU와 미국의 FTA가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EU가 셰일가스 혁명으로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게 된 미국과 FTA를 성사시키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EU가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30%는 러시아에서 수입된다.
 
이 같은 문제를 잘 알고 있는 미국 정부는 FTA 논의에 불을 지폈다.
 
지난달 26일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본부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EU 회원국들은 에너지 수입처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벗어나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로이터통신)
오바마(사진)는 또 "미국과 EU 간 FTA 협상이 조기에 타결되도록 협상을 서둘러 진행해야 한다"며 "FTA가 체결되면 미국 천연가스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펜실베니아주 국회의원은 “FTA를 진전시킬 기회가 찾아왔다”며 “푸틴을 경제적으로 더욱 고립시키는 동시에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말처럼 미-EU FTA는 양쪽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FTA 협정이 체결되면 인구 8억명을 아우르는 세계최대 시장이 탄생한다. 백악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과 유럽의 교역량은 6490억달러에 달했다.
 
독일의 공영방송 도이치 벨레(DW)는 FTA 효과로 4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협정 타결을 위해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양측의 각종 감독 규정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소비자 보호·권리, 투자자보호, 환경, 식료품 등의 규정이 그렇다. 대다수의 EU 주민들은 미국산 유전자 변형 음식이 저녁 식탁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실제로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독일인 94%가 EU의 식품 규정을 선호했다. 2%만이 미국의 기준을 택했다. 반대로 미국 국민 67%는 자국의 식품규제를 고집했고 22%는 EU의 규정을 선호했다.
 
미국은 독일에 네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이고 독일은 미국의 다섯 번째 통상 국가이므로 독일 내 여론은 미-EU FTA에 큰 영향을 미친다.
 
피터 아몬 독일 외무차관은 "이 모든 규정을 맞추기란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가 서로 다른 생각과 바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한 채 협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도청 활동 또한 미-EU FTA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한 EU 당국자들 다수가 NSA의 감시를 받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터라 미국은 개인정보보호 부문에서 유럽의 신뢰를 상실했다.
 
◇EU VS 러시아 경제영토 분쟁 장기화..대외 경책 '겹쳐'
 
동유럽을 사이에 둔 EU와 러시아의 세력 다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대외 정책이 겹치기 때문에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EU는 지난 2004년 동유럽과 남부 코카서스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 공조책인 유럽 인근 정책'(European Neighborhood Policy ; ENP)'을 마련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몰도바 등 동부 이웃 국들과의 경제공조로 동반 성장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들은 모두 러시아가 공들이고 있는 국가다.
 
러시아는 지난 2010년 1월, 구소련 국가들을 모두 관세동맹에 편입시켜 내년 1월까지 '유라시아 경제연합(Eurasian Economic Union ; EEU)'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EEU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관세동맹에 기반을 둔 경제통합체다. 구소련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한 푸틴의 바람이 이 경제통합의 성패에 달려있다.
 
(사진=로이터통신)
푸틴(사진)은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라시아경제위원회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관세동맹에 부정적인 여파가 미치고 있다”며 “우리 기업인들과 수출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CIS와 구소련 지역 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EU를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구소련 출신의 몰도바와 조지아는 이미 지난 2013년 말에 EU와의 FTA 임시서명을 완료하고 발효를 앞두고 있으나, 러시아의 견제가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는 몰도바산 와인 수입을 전면 금지하더니 이제는 천연가스 가격을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마음이 급해진 EU는 몰도바와의 FTA를 늦어도 오는 8월 이전에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방해 공작을 뚫고 정해진 날짜에 협상을 매듭지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무역협회는 보고서를 통해 EU와 구소련 국들간 FTA 협상에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명진호 한국무역협회 수석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라시아 경제연합 구상이 계획됐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며 "푸틴이 추구하는 경제동맹이 내년까지 성사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 국들이 어느 쪽을 택할지 쉽게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EU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우크라이나와 경제 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양측의 경쟁은 이어질 것"이라며 "러시아는 EU를 압박할 만한 다양한 전략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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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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