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시스템반도체 어이할꼬

"AP사업 진출은 낭설, 자칫 독(毒) 될 수도"..계륵 전락하나

입력 : 2014-04-15 오후 4:38:25
[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이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구체적으로 해보자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공언한 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SK하이닉스(000660)는 여전히 내부적으로 향후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방향성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선도적 지위와 달리 비메모리 시장에서는 후발 주자로서 당장 진입할 만한 시장도, 선도기업 대비 축적된 기술력도 부족한 상황. 게다가 최태원 회장의 부재로 적극적인 인수합병(M&A)마저 여의치 않다. 또 회사 안팎에서는 시스템 반도체 사업 확대가 오히려 실적 측면에서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마저 제기된다.
 
15일 SK하이닉스 관계자 등에 따르면 박성욱 사장의 지난 2월 시스템반도체 발언 이후 사업 추진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열띤 논의가 오가고 있지만, 여전히 사업 방향은 오리무중이다. 아직 걸음마를 떼지도 못한 상황에서 한껏 높아진 시장의 기대치가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감지된다.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사진=SK하이닉스)
 
그동안 SK하이닉스는 팹리스 업체인 실리콘웍스로부터 전력관리반도체(PMIC)를 일부 위탁 생산해 왔고, 최근에는 실리콘화일을 100%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등 비메모리 사업 영역에서 꾸준한 행보를 보였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기존 시스템IC 사업부문을 보강하는 수준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SK하이닉스의 시스템반도체 사업 업력은 6~7년 남짓한 기간에 불과하다. 지난 2004년 하이닉스의 비메모리사업 부문이 매그나칩으로 분사될 때 하이닉스가 2007년까지 비메모리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SK하이닉스는 이미지센서(CIS)를 중심으로 시스템반도체 시장에 진출했지만 매출 비중은 전체의 5% 이하에 그쳤다.
 
이후 모바일 혁명과 함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각광받기 시작했고, 메모리 시장 경쟁자인 삼성전자(005930)와 함께 SK하이닉스의 이름도 자주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AP는 그간 SK하이닉스가 영위해온 시스템IC 영역과는 전혀 다른 사업이다. 이미지센서나 전력관리반도체(PMIC)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AP 시장 진출시 큰 이점은 없다.
 
미국계 대형 팹리스업체의 고위 관계자는 "현재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프로세서 회사들의 경우 짧게는 10년, 길게는 20~30년 동안 기술력과 노하우를 쌓아온 기업들이 대다수며, 그들조차도 매출의 20% 수준을 모두 연구개발에 쏟아붓고 있다"며 "당장은 SK하이닉스의 AP 개발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퀄컴 샌디에고 본사.(사진=위키피디아)
 
특히 팹리스 업계 부동의 1위인 퀄컴을 보면 SK하이닉스의 시스템반도체 '공부'가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점이 명증하게 나타난다. 퀄컴은 지난 1985년 설립 이후 1992년까지 줄곧 영업적자를 기록하면서도 매출의 20%에 이르는 금액을 모두 R&D에 투자했다. 한때 매출 비중이 가장 높았던 통신장비 사업을 정리할 만큼 모든 역량을 통신기술, AP 설계에 집중했다.
 
같은 미국 기업인 브로드컴의 성공 스토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에 급성장하고 있는 대만의 미디어텍 또한 DVD용 플레이어 칩 시장에서 성장 기반을 확보한 이후 공격적인 M&A를 통해 TV, 휴대폰용 칩 기술을 획득한 바 있다. 이마저도 10년에 가까운 연구개발과 막대한 투자자금, 대형기업들과의 각종 라이선스 계약 등을 추진한 결과였다.
 
엑시노스 시리즈로 AP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의 경우 파운드리, 즉 위탁생산과 자체 설계제품 생산을 병행하는 IDM(종합반도체) 파운드리를 표방해 왔기 때문에 직접 비교가 불가능하다. 
 
또 삼성전자는 수년간 애플의 AP를 파운드리 생산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비롯해 같은 회사 내 IM(IT모바일) 사업부문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도 우위 요소다. 이 같은 강점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퀄컴의 독주에 밀려 시스템반도체 실적은 내리막길을 면치 못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지난 2월 박성욱 사장의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대한 발언은 구체적으로 AP를 지칭했다기 보다는 다양한 시스템반도체 시장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로서는 시스템반도체가 분명 부담이다. 수장의 발언이 시장에 전해지면서 자칫 계륵이 될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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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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