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조선업계가 저가수주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선 수주량이 늘면서 조선업 회복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쏟아졌지만 정작 조선사들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신조 수주가 증가하면서 조선 3사를 중심으로 2~3년치 수주 물량은 확보됐지만 아직 남아있는 저가 물량으로 인해 수익성 개선은 요원한 상태. 특히 지난해 말부터는 상선에서 해양설비로 저가수주 여파가 확대되면서 고심을 깊게 하고 있다.
그간 해양플랜트, 드릴십 등 해양설비는 국내 조선업계를 이끌어 갈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꼽혀왔다. 전 세계 선박 공급과잉으로 신조선 발주가 바닥을 치고, 중국 조선소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수주량을 늘려갈 때, 해양설비는 중국과 차별화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였다.
일반 상선과 달리 중국 조선업계와의 기술적 격차가 크고, 상선에 비해 고부가 제품이기 때문에 국내 조선업계는 해양설비 인력을 한동안 대폭 늘리고, 수주에 집중하는 등 사실상의 총력전에 돌입했다.
하지만 부진한 실적을 만회키 위해 수주했던 해양설비들이 이제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일반 상선의 경우 대부분 설계가 비슷하고 시리즈로 발주하는 경우가 많아 첫 번째 선박을 진수하고 나면 점점 경험이 쌓이고 건조속도가 빨라지는 데 반해 해양설비는 발주사마다 요구사항과 설비 스펙이 달라 매번 설계를 새로 해야 한다.
또 제작에 들어가더라도 요구사항이 계속 추가되면서 완성 전까지 설계를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조선3사를 비롯한 국내 조선업계가 세계 일류 조선기술을 확보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처음 제작해보는 설비가 많다 보니 시행착오도 필수적으로 거치게 된다. 설계 변경과 시행착오로 인해 인도 날짜를 넘기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인도일을 넘기면 그 기간만큼 지연보상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조선소들은 인력을 확충해 인도일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숙달된 해양설비 인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그러다보니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늘고, 인도일은 지연되고, 중간에서 새는 비용까지 늘게 된다.
또 수주와 동시에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주 시점과 제작 시점의 원재료 비용 차이에 의해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렇다 보니 일반 상선에 비해 해양설비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미국 셰일가스 붐의 영향으로 심해 시추 활동이 줄면서 해양설비 발주 자체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상위 조선소 대부분이 지난해 상선 수주로 수주잔량을 확보해 저가수주 걱정을 떨치는 듯 보였지만, 이번에는 발주 시장이 얼어붙어 새로운 일감이 줄어들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26기에 달했던 전 세계 드릴십 수주량은 올해 10기 안팎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그간 채굴 비용이 많이 드는 심해 유전과 가스전을 개발한 것은 내륙에서는 자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셰일가스 개발로 굳이 바다까지 나가서 자원을 채취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국제원유 생산량이 정체되고, 가격도 큰 변동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현재 생산된 드릴십의 60% 이상이 가동을 멈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지난 2월 싱가포르의 한 조선소가 드릴십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면서 경쟁자가 더 늘게 된 점도 시장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양플랜트 건조경험 부족으로 공기가 지연되고 인건비 증가로 수익성도 떨어지고 있다"며 "불황기 때 수주한 물량이 대부분 소화되는 올 3분기부터는 실적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저가수주가 조선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운데 상선에서 해양설비로 저가수주 여파가 확대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