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셰어링 확산..채용도 '기지개'

입력 : 2009-03-08 오전 11:48:27
임금 삭감 등의 고통 분담을 통해 동료를 거리로 내보내지 않고, 한 명의 젊은이라도 더 뽑는 '일자리 나누기' 운동이 재계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극심한 경영 불확실성에 당초 연간 인력 수급 계획조차 내놓기를 꺼리던 기업들이 속속 정규직 또는 인턴 채용에도 나서, 얼어붙었던 고용시장에 부족하나마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책임 이행에 앞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만큼, 질과 양 측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수준의 고용 확대를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 '임원 임금 삭감-직원 동결' 선언 줄이어
 
8일 재계에 따르면 연초 이후 주요 기업들의 임금 삭감 또는 동결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불황에서 살아남으면서도 동시에 고용을 유지하거나 신규 채용에 나서려면 기존 임직원들의 몫을 조금씩 줄이는 것 밖에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경영진과 임원의 올해 연봉을 20% 안팎 삭감했고, 초과이익분배금(PS)도 전무급 이상은 전액, 상무급은 30%를 자진 반납했다.
 
또 최근에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전 직원의 올해 임금을 동결하고 PS와 생산성격려금(PI)의 상한선도 '연봉 50%'에서 '연봉 30%', '월 기본급 300%'에서 '월 기본급 200%'로 각각 낮췄다.

LG전자 역시 지난 6일 끝난 '임금 및 단체협약 갱신을 위한 교섭'(임단협)에서 노경 양측이 올해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

현대.기아차그룹 임원들도 급여를 10%씩 자진 삭감하는 한편 과장급 이상 관리직 임금을 동결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CEO(민계식 부회장, 최길선 사장)가 아예 임금을 모두 반납해 주목을 받고 있다.

SK그룹 임원과 사외이사는 연봉 10~20%와 성과급 일부를 스스로 회사에 돌려줬고, 포스코와 한화그룹, 현대백화점 및 계열사, STX그룹 등의 사장단.임원들도 연봉의 10~20%를 자진 삭감 또는 반납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 삼성.CJ 공채 개시..현대차.포스코.SK 인턴 1천명 이상
 
임금 삭감과 동결 등을 통해 마련된 재정 여력으로 심각한 구직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려는 움직임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10여개 삼성 계열사는 지난 6일 일제히 삼성 채용페이지 '디어삼성(www.dearsamsung.co.kr)'에 2009년 상반기 3급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내걸었다.

채용 규모와 관련, 삼성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아 작년 수준은 어렵겠지만, 일자리 나누기 동참 차원에서 당초 계획했던 수준보다는 다소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7천500여명, 2007년과 2006년에는 각각 6천750여명, 8천500여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다.

LG도 대졸 4천명, 기능직 2천명 등 모두 6천명 규모의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을 확정했다. 사업부문별로는 ▲ 전자부문 4천명 ▲ 화학부문 800명 ▲ 통신.서비스 부문 1천200명 등이다.

이 가운데 대졸 신입사원 모집 인원은 4천명으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당초 계획했던 3천명보다 1천명 늘려잡았다는 게 LG측의 설명이다. 늘어난 1천명의 재원은 임원 연봉을 직급에 따라 기본급 기준 10~30%를 삭감하고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을 5~15% 줄여 마련할 방침이다.

당장 LG는 상반기에 추가 채용키로 한 1천명을 포함, 2천명의 대졸 신입 직원을 모집한다. 이 가운데 500명은 인턴제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CJ그룹도 오는 13일부터 상반기 대졸 신입 및 인턴 채용 전형을 진행하고, 포스코그룹 역시 포스코.포스코건설.포스코특수강.포스데이타 등 16개 계열사에서 인턴사원 모집에 들어갔다.

포스코는 상.하반기 각 800명씩, 올해 모두 1천600명의 인턴을 뽑을 예정이다. 여기에 필요한 100억원 비용은 임원 보수 반납분과 신입직원 초임 삭감분으로 충당한다.

아울러 포스코는 사회적 고용 안정 차원에서 일정을 앞당겨 이르면 이달 중 정규직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SK그룹은 일반사무.마케팅.생산기술.정보통신 등의 부문에서 '상생 인턴십' 1기 참여자를 모집한다. SK는 줄어든 임원 임금으로 올해 인턴 일자리 1천800개를 마련하고, 특히 채용한 인턴을 협력업체 등 중소기업과 함께 활용할 계획이다.

현대.기아차그룹도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대졸 인턴사원 1천명을 추가로 뽑고, 글로벌 청년봉사단 1천명을 해외로 파견한다.

이밖에 올해 STX그룹도 상.하반기 공채를 통해 1천500명, 롯데그룹은 인턴 700명과 대졸 신입 1천명을 포함한 정규직 6천600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롯데의 인턴과 대졸 공채 예정 규모는 작년보다 각각 500명, 100명 늘어난 것이다.

제약업계에서도 지난 1월초 임원 연봉 동결을 결의한 한미약품이 상반기에 반기별 사상 최대 규모인 200명을 뽑고, 대웅제약 역시 임원 연봉 삭감.동결분으로 인턴사원 120명을 채용키로 했다.

◇ 재계, 경영난-사회적책임 사이 '고민' = 세계적 경기 불황 속에서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는 동시에, '일자리 보전과 창출'이라는 사회적 책임도 저버릴 수 없는 기업들의 고충이 점차 커지고 있다.

대기업이라해도 너나 할 것 없이 경영난을 겪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공채를 통해 정규직 자리를 늘리면 경기 변동에 따른 고용 유연성 측면에서 큰 리스크(위험)를 감수해야하고, 그렇다고 단기 인턴 방식으로 잡셰어링에 동참하자니 인력의 질이나 장기 육성 차원에서 부작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업황이 나쁜 상황에서 사회적 책무까지 수행하기란 쉽지 않을 일"이라며 "임금 삭감에 따른 사기 저하나 채용 확대로 인한 비용 상승 등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의 부정적 영향도 있지만, 최근 재계의 대세인만큼 따를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지만, 기업은 생존을 위해 무엇보다 생산성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기업의 지속 경영에 부담을 줄 정도의 무리한 채용은 생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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