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충희기자] 원달러 환율이 1020원 아래로 무너지면서 국내 최대 수출기업 중 하나인 현대·기아차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수년째 이어져온 엔저 약세에 원화 강세까지 겹치면서 수익성 확보에 빨간 불이 켜졌기 때문.
업계에서는 정의선 부회장이 지난 9일 미국 출장길에 오른 이유가 현지법인 및 공장 등을 둘러보고 점검하는 동시에 환율하락에 따른 시장성 악화에 대해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으로 풀이했다.
정 부회장은 오는 13일 귀국해 현대차그룹 고위층 인사들과 해외시장 현황을 분석하고, 지난 4월부터 가동되고 있는 컨틴전시플랜(비상경영계획)의 연장선상에서 한층 강화된 계획을 수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적 마지노선 1000원대 붕괴 임박..현대차, 수익성 하락 불가피
현대차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지난달 내놓은 '원/달러 환율 전망 및 시사점' 자료에서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국내 완성차 5사의 수익이 42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5월 기준 현대·기아차의 누적 수출량은 총 106만8700여대로, 완성차 5사의 전체 수출량 134만2000여대의 약 80% 수준에 달한다. 손실액 4200억원의 80%를 현대·기아차가 독식할 것으로 단순 계산할 경우, 현대차그룹은 환율 하락만으로 연간 3360억원의 손실을 앉아서 지켜봐야만 하는 입장이다.
현대차가 1분기 사업보고서에서 공개한 연구개발 비용이 약 3830억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공포감을 느낄 만한 수치다. 하락폭이 커지면 커질수록 수천억원의 이익이 공중분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물론 유명 해외 투자기관들까지 앞다퉈 원화값 강세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현대차의 고심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유럽의 유명 투자기관 크레디트스위스는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이 975원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고, 모건스탠리는 내년 1분기 환율을 980원으로 예상하는 등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암울한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내년 중 원달러 환율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000원대가 붕괴될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소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예상되는 내년 하반기 이후 환율 하락세가 가속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900원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미국 연준이 IT버블 붕괴, 9.11 사태 등에 따른 경제적 충격에서 벗어나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상했던 2004년 하반기와 유사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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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올해 대미 수출 역대 최대치 경신..환율 공포 타개할 최적지
이처럼 빨라지고 있는 원화값 강세 기조로 현대차그룹이 미주 현지에서 추진하고 있는 멕시코 신공장 설립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주 신공장 설립은 멕시코 정부와 협의 중인 단계로 구체적인 후보지로 누에보레온주 몬테레이를 선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멕시코의 대미 자동차 수출량도 올해 들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는 등 우호적인 환경이 이어지고 있어 업계는 현대·기아차에게 이곳 외에 더 이상 최적의 후보지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멕시코 자동차산업협회(Mexican Auto Industry Association)에 따르면, 멕시코의 5월까지 자동차 누적 수출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 증가한 100만400여대에 달했다. 이중 미국으로의 수출량은 19% 폭증한 74만2000여대다. 지리적 이점은 물론 관세 혜택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앞다퉈 멕시코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원화값 상승이 멈추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국내공장 수출량이 많은 기아차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11일 "급격한 원달러 환율 강세를 반영해 이익 추정치와 목표주가를 하향조정한다"며 "2분기 실적은 현재 약 9500억원 수준인 영업이익 컨센서스(시장 기대치)를 11% 하회하는 8414억원"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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