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관세화' 선언 유보..'입장 연기'는 정부 주특기?

입력 : 2014-06-30 오후 5:41:34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가 이달에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에 대한 최종 입장을 정하기로 했지만 이를 다음달로 미뤘다.
 
정부는 추가 의견수렴을 거쳐 더 나은 방안을 찾겠다고 했지만, 농업계는 정부가 시간이 촉박한 틈을 타 서둘러 의견을 발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30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현오석 경제부총리 주재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쌀 관세화 유예에 대해서는 국회 등과 의견 수렴을 더 거치고 쌀 산업의 발전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도록 하겠다"며 정부 입장 발표를 연기했다.
 
애초 정부는 올해 WTO 쌀 관세화 유예가 끝남에 따라 6월에 쌀 관세화에 대한 정부 방침을 정하고 9월까지 이를 WTO 통보한 뒤 WTO와 쌀 관세화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하지만 농업계의 반발이 점차 거세지고 정치권까지 정부의 쌀 관세화 방침에 선뜻 동조하고 나서지 못하자 정부는 추가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것.
 
실제로 정부가 전문가와 농업계 의견을 모으기 위해 연 공청회와 지역별 쌀 관세화 설명회는 농민의 반발로 파행을 겪었고, 최근에는 국회에서도 추가적인 공청회와 의견수렴 필요성을 제기하며 관세화 결정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국익과 농업계를 모두를 위한 방안을 찾고자 한다"며 "정부에서 방침을 정하고 협의해야 할 절차가 많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쌀 관세화에 대한 입장 발표를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어차피 정부가 공공연히 쌀 시장을 개방하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했고 농업계도 이를 다 아는데 굳이 여론 눈치를 보며 관세화 선언을 미룰 리 없다는 것.
 
그보다는 쌀 관세화의 핵심인 관세율이 아직 안 정해졌고 국회와 WTO에 낼 수정양허표(Schedule of Concessions) 작성이 끝나지 않아 관세화 선언을 미뤘다는 주장이다.
 
전국농민총연맹(전농) 관계자는 "정부가 시간 없다고 쌀 관세화를 서두르더니 얼마나 준비가 부족했으면 이를 미뤘겠냐"며 "정부는 6월 중 입장 발표가 성급하다고 주장했던 농업계 주장을 수용해 이제라도 원점에서 이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정부의 행태를 봤을 때 정부가 시간이 촉박했다는 핑계를 대며 서둘러 관세화를 선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농 측은 "정부는 지난해 TPP 협상 참여선언을 할 때도 안 하는 척 시간을 벌더니 금요일 오후에 기습적으로 이를 발표했다"며 "이번 역시 겉으로는 의견을 수렴하는 척 하다가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핑계로 쌀 시장 개방을 선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WTO 쌀 관세화란 지난 1994년 체결된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에 따른 것으로 한 나라가 쌀에 관세를 붙여 쌀을 수입하든지 쌀 전면 수입을 안 하는 대신 의무적으로 일정량의 쌀을 수입하든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4년 이래 20년동안 쌀 관세화를 유예하고 있으며, 올해 우리나라의 쌀 의무수입량은 40만9000톤으로 국내 쌀 생산량의 10%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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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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