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SK하이닉스(000660)와 도시바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 유출 공방이 본격화 됐다. 다만 도시바가 제기한 소송이 특허침해가 아니라 기술 유출에 대한 소송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SK하이닉스가 해당 기술을 빼내 자사 생산라인에서 사용했다는 주장을 입증하는데 적지않은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2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도시바가 SK하이닉스에 제기한 소송은 낸드플래시 제조 및 설계에 대한 특허가 아니라 제조 공정 및 기술 등에 대한 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도시바 측에서도 이번 소송에 대해 '특허 침해'를 언급하기보다는 기술 유출에 대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주장하고 있다.
도시바와 샌디스크가 각각 제기한 소장이 모두 현재 SK하이닉스에 전달된 상황이며 SK하이닉스는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다. 도시바가 일본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의 손해배상금액은 1조1000억원 규모, 샌디스크가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의 배상금 요구금액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 3월 도시바는 2008년에 도시바·샌디스크의 합작 공장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SK하이닉스로 이직하면서 10기가바이트(GB) 분량의 반도체 제조공정 등 기밀문서를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샌디스크는 해당 기밀문서를 증거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소송 과정에서 상세히 공개될 예정이다.
플래시 메모리의 종주국인 도시바는 사실상 낸드플래시 설계에 대한 원천 특허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도시바의 라이선스가 필요하다.
삼성전자(005930) 역시 도시바와 장기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이후 현재까지도 일정부분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 역시 도시바와 크로스 라이선스가 체결돼 있다.
다만 문제가 된 부분이 특허가 아니라 도시바와 샌디스크의 공정 노하우라는 점에서 입증 과정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낸드플래시 제조와 관련해 수많은 기술이 필요한데 설계 자체에 대한 특허는 도시바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만큼 일정 부분의 사용료를 내야하지만 제조공정의 경우 모든 회사가 각자만의 다양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도시바의 이번 소송에 의구심을 담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도시바가 제기한 일방적 주장에 대한 검토 없이 곧바로 일본 정부개 개입해 조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국가 간 특허 침해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는 사례는 비교적 흔한 편이지만 '산업 스파이'라는 명목으로 공권력이 발동돼 곧바로 관계자를 체포하는 일련의 과정이 도시바와 정부 차원의 공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아니라 SK하이닉스를 타깃으로 삼은 배경에도 시선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도시바가 삼성전자에 소송을 걸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장기계약을 맺고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는 낸드플래시 설계 특허말고 제조공정상에서 문제 삼을만한 부분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앞선 D램 기술력에 비해 낸드플래시 업력이 짧은 SK하이닉스가 타깃이 됐다는 설명이다.
국내 증권업계에서는 도시바가 기술 유출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거나 장기적 사안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홍성호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부 보안규정 상 대외비 문서는 5년내 파기되기 때문에 수년이 지난 상황에서 기술침해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SK하이닉스 사업장 전경.(사진=SK하이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