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충희기자] 쌍용차 노사가 지난 23일 평택공장에서 열린 ‘16차 임금·단체협약 협상’에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노조의 통상임금 확대 요구를 사측이 전격 수용키로 하면서 별 무리 없이 합의에 이르렀다.
앞서 지난 17일 한국지엠이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처음으로 통상임금 확대를 선언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현대·기아차는 궁지에 몰렸다. 올해 임단협에서 노조로부터 통상임금 확대를 요구받은 완성차 4개사(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 쌍용차) 중 2개사가 수용을 결정함에 따라 남은 시선은 현대·기아차로 쏠리게 됐다.
한국지엠과 쌍용차의 통상임금 확대 소식에 현대차 노조는 한껏 들뜬 분위기다. 적절한 비교대상으로부터 추진 동력을 얻은 현대차 노조는 오는 30일 울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통상임금 확대의 당위성을 대내외에 공표할 예정이다. 현대차로서는 경쟁사들의 발빠른 결정에다 노조의 거센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사면초가에 몰렸다는 평가다.
현대차의 입장은 여전히 단호하다. 국내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부담마저 가중될 경우 향후 순항을 장담키 힘들다는 게 자체 평가다. 환율 부담도 이겨내기 힘들 정도로 압박이 심해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24일 "각 사별로 처한 상황이 다르다"며 "회사 입장은 지금 소송 중인 법원의 판결을 지켜본 뒤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판결을 통해 현대차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기류다. 월 15일 미만 근무자에게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사내 세칙이 대법원이 확정한 '고정성' 요건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일부 법학자들 역시 현대차의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며 현대차에 힘을 실어줬다.
특히 직원들의 평균연봉만 지난해 기준 9400만원에 달해 통상임금이 확대될 경우 감당키 힘들 정도의 추가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은 회사로서는 짊어지기 어려운 부담이다. 급격한 환율 변동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황에서, 연구개발 비용과 마케팅 비용의 집행도 이어가야 하는 과제가 있다. 여기에다 그룹 차원의 글로벌 본사 건립이 추진되면서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 인수에 예상되는 자금만 4조원에 달하는 점도 경영진을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 측은 현대차그룹이 그간의 고속성장을 통해 곳간에 쌓아둔 현금(사내유보금)만 천문학적인 만큼 통상임금 확대로 인한 경영상의 문제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지난 16일 CEO스코어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현대차그룹 내 10개 상장사가 보유한 사내유보금은 총 11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9년 41조원에 불과했던 사내유보금이 4년여만에 72조원 이상 폭증했다. 2013년 6만3000여명의 직원들에 지급한 총 급여액이 5조9700억원이었다는 점에서, 회사가 통상임금 확대를 수용할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노조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더욱이 최근 수년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쌍용차가 통상임금 확대를 수용한 터라 현대차의 입장은 더욱 난처할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쌍용차는 올 2분기 영업손실만 157억원을 기록했으나 통상임금 확대 이외에도 기본급 3만원 인상, 생산목표 달성 장려금 200만원 지급 등을 잠정 합의했다.
한편 노동조합단체들의 합법적 파업권을 결정하는 중앙노동위원회는 23일 한국지엠 노조가 신청한 노동쟁의 조정에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한국지엠 노조는 사측과 교섭이 결렬될 경우 합법적인 파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노조는 올해 1월1일부로 통상임금 확대를 소급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8월1일부터 통상임금 확대를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러나 노사 양측이 통상임금 확대에는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는 만큼 합의안 타결 가능성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6일 현대차 양재사옥 앞에서 '통상임금 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이경훈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장.(사진=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