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추석이 다가온다. 조카들이 많다. 똑똑한 아이. 아픈 아이. 가장 어린아이. 나이 많은 아이. 부유한 집의 아이. 가난한 아이…. 어떤 조카에게 더 많은 용돈을 줄 것인가. 모두에게 똑같이 분배할 것인가. 용돈은 조카의 부모에게 흘러들어 갈 가능성이 있으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줄까.
신정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쓴 <복지국가의 철학>은 이러한 '분배의 정의' 관점에서 복지정책을 설계·운용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철학적 문제를 다룬 책이다.
책에 나오는 공리주의자와 존 롤스 사이에 형성되는 '어려운' 논의를 접어두고, 앞서 언급한 조카와 용돈을 노인과 기초연금으로 바꿔보면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65세 이상 고령자 100%에게 기초연금을 20만원씩 지급한다면 보편적 복지에 가깝다. 이 경우 모든 노인이 수혜자가 되므로 기초연금이 다른 사회구성원의 온정적 시혜의 산물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하는 사회적 권리로 간주된다.
하지만 고급 승용차를 타고 고가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등 '잘 사는'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충분히 가능하다. 능력이 있는 사람을 기초연금 대상에서 제외하고 이들이 납부해야 할 세금을 줄여주는 게 복지 수준을 높이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기초연금 대상자 범위가 넓을수록 복지지출이 늘어나므로 세금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한정된 재원을 더 많은 사람에게 지원하면 1인당 급여 수준이 낮아져 빈곤층 복지 개선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설득력이 있어 보이고, 정책에도 반영됐다.
하지만 저자는 보편주의적 제도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특히 보편적 복지국가에서는 중산층도 복지 혜택을 누리기 때문에 복지국가 발전을 지지하게 되므로 중산층과 빈곤층이 복지국가 발전을 지지하는 '복지동맹'의 구성원으로서 서로 연대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새로운 복지정책이 나오든 말든 나와 관계가 없다면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기초연금 노인 100%에게 지급이라는 공약이 10%였다면 인기를 끌었을까. 아울러 중산층도 복지의 수혜 대상이 되면 사회적 위험을 만난다 하더라도 사회안전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경제적 계산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측면도 있다.
이와 달리 선별주의적 제도는 복지재원 부담자와 수혜자가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에 복지재원을 늘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혜택은 누리지 못하면서 비용만 부담하는 계층의 조세저항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선별주의 제도에 수반되는 자산조사에는 행정비용이 들어가는데 보편주의적 제도는 그것이 필요 없다. 급여 수급자를 빈곤의 덫에 빠트릴 수 있으나 이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급여 수급 조건을 유지하려고 빈곤 상태를 유지하려는 유인이 생긴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철학적 고민을 바탕으로 국민을 설득했는지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다시 추석 용돈으로 돌아가 보자. 조카 A는 중학교 3학년이고 빈곤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 용돈을 더 많이 쥐여주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B는 고교를 졸업했으나 부모를 얼마 전에 잃어 빈곤 정도가 A보다 심하다. 대학교 진학도 포기한 상태.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게으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성실하게 할 것 같지 않다. 누구에게 용돈을 줄까.
저자는 B를 선택했다.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정도와 가능성보다는 현재의 처지를 더 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A의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B의 곤궁한 현실은 분명한 현실이다. 가능성을 중시하다 보면 가장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되기 쉽다.
하지만 생애주기별 모든 시기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어린아이의 건강한 성장도 소중하고 장년기의 일자리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복지 재원이 부족할 때는 특정 연령층을 우대할 것이 아니라 부족한 재원을 모든 연령층에 고르게 배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각종 잣대로 복지 대상자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사회구성원을 인적 속성과 관계없이 평등한 개인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라서다. 책은 이런 고민거리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