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영택기자] 최근 시장에 알짜 매물들이 쏟아지면서 재계의 관심이 비상해졌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인수합병(M&A)이 부담이지만, 대형 매물을 낮은 가격에 인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매물을 대하는 시장 반응이 극도로 얼어붙은 가운데 몇몇 매수 대기자들은 물밑에서 이해득실 계산에 분주한 모습이다.
◇금호아시아나, 금호고속 인수 통해 ‘제2의 창업’ 선포
금호고속의 최대주주인 IBK투자증권과 PE케이스톤파트너스 사모펀드는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와 안진회계법인을 각각 매각 주관사와 회계 자문사로 선정하고 본격적으로 금호고속 매각에 나섰다. 2년간 매각제한(Lock-up)이 걸려 있던 금호고속이 이달 중 매각제한이 풀리면서 새 주인 찾기에 나선 것.
◇금호고속이 2년 만에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자료=금호고속)
금호산업은 지난 2012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우리은행 등 채권단에 금호고속(100%), 서울고속버스터미널(38.7%), 대우건설(12.3%) 지분을 패키지 형태로 묶어 매각한 바 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 잇단 대형 매물 인수로 재무구조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자회사까지 내뱉아야 하는 승자의 저주였다.
금호고속은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이 지난 1946년 처음 세운 회사(옛 광주여객자동차)로, 금호그룹의 모태라는 상징성을 품고 있다. 특히 올해는 고 박인천 회장의 30주기로, ‘제2의 창업’을 선언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고속 인수를 통해 그룹의 정통성과 함께 명분도 쌓겠다는 방침이다.
박 회장은 과거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하면서 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고, 결국 2010년 금호그룹은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과도 결별하는 진통을 겪었다.
때문에 박 회장은 금호고속 인수를 통해 본인의 과오로 엉켜버린 실타래를 직접 풀겠다는 의지다. 또 동생과 다투고 있는 그룹 적통으로서의 정통성도 함께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박 회장의 금호고속 인수 의지는 확고하나, 이 같은 의지가 자칫 입찰 과정에서 인수가격이 올라가는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경계하는 모습이다.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고속을 인수해야 하는 정당성을 홍보하며, 눈치 작전에 돌입해 있다.
◇대한전선, 팬오션, 팬택 등 대형 매물도 줄이어
국내 2위 전선기업인 대한전선의 새 주인도 이르면 오는 11월쯤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대한전선 채권단은 지난달 28일 하나대투증권과 JP모건을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보유 주식과 경영권을 매각한다고 공고했다.
대한전선은 국내는 물론 전세계 전선 시장의 구도를 뒤바꿔 놓을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매물로 평가된다. 인수 시 단번에 글로벌 10위권 전선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매력에도 대한전선의 매각가가 7000억원 안팎으로 높아 자금 부담이 크다는 점이 걸림돌로 지적된다. 인수처로 주목받던 LS그룹은 공개적으로 대한전선 인수를 부인했다.
이외에도 올 하반기 팬택, 팬오션(옛 STX팬오션), 쌍용건설, 동부하이텍, 동부특수강, 동양시멘트 등 알짜 매물들이 쏟아질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이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온 가운데, 포스코는 재무구조 개선 및 본업인 철강에 대한 집중을 위해 대우인터내셔널도 매물로 내놓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고 있는 현대그룹과 한진그룹도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어 추가 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대형 매물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기업들이 불투명한 경영 환경 속에서 대규모의 자금을 배팅해야 한다는 부담과 함께 매각가와 인수가의 괴리가 크다는 것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매물로 나온 철강, 조선·해운, 건설 등 대부분의 산업 업황이 극도로 얼어붙어 있어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악재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하반기에도 인수합병 시장은 활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우선 시장 상황이 불확실하고, 대부분 매물들은 대기업들이 원하는 신사업 방향이 아닌 기존 사업들이기 때문에 현재 시장에 나온 매물들을 인수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대기업 그룹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