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보선기자] "정책은 계속 나오는데, 대형사 얘기죠. 하나둘이 아니라 하나같이 저희에게는 와닿지 않습니다. 방향 자체가 사이즈에 맞는 경쟁력이고 그 중심에 대형사가 있는 게 현실이죠."
한 중소 증권사에 근무하는 ㄱ팀장은 최근 정부의 자본시장 규제완화 정책과 관련해 중소 증권사들이 느끼는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다.
증권업황이 워낙 침체되면서 정부의 금융규제개혁안이 전체적으로 보험사 등 기타 금융사보다 증권사에 우호적이라는 평가까지 이어졌지만, 중소형사들은 웃지 못했다.
증권업을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가 수익, 구조조정, 구조개편 체제로 가닥 잡히며 경쟁구도 개편에 따라 중소형사와 일부 외국계의 탈락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어서다.
◇경제정책방향(규제개혁) 설문조사(자료제공=관계부처 합동)
◇중소형사 상대적 박탈감.. 커지는 '온도차'
침체된 증권업을 살리기 위한 정책 당국의 정책 방향에 맞춰 업계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지만, 중소 증권사들은 정책 수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호소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새 경제팀이 꾸려진 가운데 실시한 경제정책방향 설문조사에서도 규제개혁 분야에서 가장 필요한 분야로 '중소·중견기업 애로 완화'가 33.3%로 높게 나타났다.
KDB대우증권은 보고서에서 "정책들은 '구조개편'이라는 하나의 소실점을 향하고 있다"며 "내년부터 콜 머니 차입이 차단되면서 중소형사의 적정 유동성 관리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
유동성은 고객과의 거래안정성, 연속성과 직결된다.
금융위의 금융규제개혁안으로 종합금융투자사(투자은행·IB)의 신용공여 한도가 중장기적으로 일반신용공여와 기업신용공여 각각 100%씩 총 200%까지 확대된다.
이에따라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증권사인 삼성, 현대, 우리투자, 한국투자, KDB대우증권이 IB 활성화의 장애물로 여겼던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하지만 나머지 증권사에 대해서는 일반신용공여와 기업신용공여의 합이 자기자본의 100%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용공여 100% 허용은 자본력이 높은 대형사에 일부 도움이 되겠지만, 중소형사에는 사실상 변화가 있는 내용이 아니다"며 "전반적으로 중소형사와 대형사에서 반응이 차별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의 산정기준이 개편된데 이어 대형사들을 위한 정책이 이어진 터라 중소형사들의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대형사와 유사한 수익구조로는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지적은 잇따르고 있지만 중소형사의 자구안 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A증권사 관계자는 "NCR 제도가 개편되면서 신규 사업을 전개하는 데 제약을 느끼고 있고, 내년부터 콜차입이 제한돼 자금조달을 해결하는 것도 큰 숙제"라며 "금융당국은 이미 대형사 위주의 업계 개편을 천명하고 나서지 않았느냐"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2월 단기자금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2015년부터 증권사의 콜시장(초단기 자금을 차입하거나 대여하는 시장) 참여를 원칙적으로 배제했다. 올해 자기자본의 15% 이내(2분기), 10% 이내(3분기), 5% 이내(4분기)로 매분기 차입 한도를 줄인데 이어 내년부터는 증권사의 시장 참여가 아예 제한된다.
대우증권은 "증자 여력이 낮은 곳은 내년부터 라이선스 반납, 상호 합병, 청산 등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중소형 특화 비즈니스 모델 개발 지원해야"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소형사들은 실질적인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B증권사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리테일(소매)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본사 영업을 강화했다"며 "IB. 채권, 기업금융 등을 확대해 시장 변화에 어느정도 대처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등 외국 증권사의 경우 규모는 중소형이지만, 대형사 출신의 맨파워를 갖춘 '부티크' 가 니치마켓을 공략해 성공한 것이 좋은 사례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국내 중소형사도 특화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 '상향식(Bottom Up)'으로 오히려 정책 요구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기업정책실장은 "금융투자산업 특성상 중소형사의 요구를 모두 파악하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하고, 업계도 정책 트렌드에 맞춰 거시적인 면에서 역할을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대형사와 같은 수익구조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현실"이라며 "구체적 비즈니스 모델을 당국에 상향식으로 요구해야 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데 금융투자협회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이러한 의견을 수렴하고, 중소형 증권사들이 산업 부문별로 특화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재웅
동양증권(003470) 연구원은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IB, 부동산, FICC, 프로젝트 등 새로운 니치마켓을 공략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계속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20일 중소기업현장방문으로 인천남동공단 소재 (주)파버나인을 방문해 이제훈 대표로부터 제품생산라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날 최 부총리의 인천 남동공단방문은 산업현장 방문을 통한 정책현장의 체감도 제고와 애로 및 건의사항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이뤄졌다.ⓒ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