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도운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원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앞서 개인 비리로 1년2월의 형기를 마치고 이틀 전 출소한 뒤 그는 이번 판결로 재수감을 면했다.
재판부는 정치관여로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원 전 원장이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라거나 선거에 개입하라는 지시를 명시적으로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공직선거법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 부장)는 11일 원 전 원장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월에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종명 전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에게는 각각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검찰이 지난 결심 공판에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이 전 3차장과 민 전 단장에게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을 각각 구형한 것에 비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재판부는 우선 국정원이 주로 홍보한 내용이 ▲4대강 사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제주해군기지 건설 ▲원자력발전소 등임을 지적하면서 이는 정치적인 내용으로 정치관여를 금지한 국정원법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즉 4대강 사업과 한미FTA 등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치적으로, 대통령은 공무원이지만 당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책 행보는 특정 당을 지지하는 것이어서 정치행위에 해당되며, 이를 금지한 국정원법 위반이라는 설명이다.
방어권 논란을 불렀던 '사이버 활동 지시'에 대해서는 인터넷 사이트에서의 찬반클릭 1214건, 글·댓글 2125건, 트윗·리트윗 11만3621건을 유죄로 인정했다. 나머지 트윗·리트윗 67만3077건은 대해서는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트위터에서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계정으로 1157개를 특정했지만 수사의 단초가 된 심리전단 직원 김모 씨의 '시큐리티 파일' 증거능력이 배척되면서 175개 계정만 국정원 직원들이 사이버 활동에 사용한 계정으로 인정된다"며 "나머지 982개 계정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심리전단 직원들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비판 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공직선거법상 선거 운동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과 '선거 또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엄격히 구분되는 개념"이라며 "비록 피고인들의 행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라고 볼 여지가 있더라도 그보다 좁은 개념인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 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이 판결에 비춰 원 전 원장은 적어도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라거나 선거에 개입하라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지시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만큼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이 부분에 대한 검찰 입증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검찰은 국정원의 홍보 활동이 선거 시기가 되면 당연히 선거운동이 된다는 취지로 재판 내내 밀어붙였지만 재판부는 선거 시기 이전부터 계속해서 특정 정책을 지지·반대한 경우 일률적으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오히려 "원 전 원장의 전부서장회의 발언을 보면 선거운동을 지시했다고 볼만한 내용이 없다"며 "오히려 선거에 절대 개입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명확히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통상적인 선거운동이라면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활발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트윗과 리트윗 건수가 2012년 10월 이후 뚜렷이 감소했다"며 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기소대상인 행위 시점도 문제가 됐다. 재판부는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은 특정한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검사가 선거운동의 시작점으로 기소한 2012년 1월은 제18대 대선 후보자가조차 정해지지 않은 때였다"며 선거 개입성을 부정했다. 선거법 위반혐의와 관련한 원 전 원장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원 전 원장은 국정원장으로서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책임이 있음에도 직원들에게 국정 홍보 등의 정치 관여 활동을 지시했다"며 "이는 국민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 국가기관이 직접 개입하는 행위로 어떠한 명분으로도 허용될 수 없다"고 질책했다.
재판부는 이어 "원 전 원장이 범행의 위법성을 인식했다거나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정치 공작의 목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양형배경을 설명했다.
또 "적극적으로 범행을 인식하고 지시하지는 않았고 국정원장으로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획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업무 관행을 탈피하지 못하고 답습한 부분도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국가정보원법 위반·공직선거법상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1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선고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