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준호기자]
국내 최대의 게임사 넥슨은 지난 1994년 창립 이후, 국내 어떤 게임사보다 더 과감한 도전과 통해 온라인게임 시장을 창조해낸 벤처기업이었습니다. 물론 성공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큰 성공을 이루기도 했고, 성장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전 세계 많은 벤처기업이 걸어온 길로, 현재 스타트업 창업에 도전하는 많은 창업가의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오는 12월 넥슨은 창립 20주년을 맞습니다. <뉴스토마토>는 넥슨 창립 20주년을 맞아 현재의 넥슨을 만들어준 20가지 장면을 선정해 그 의미를 살펴봤습니다.(편집자)
◇ 1. 1994년 12월 주식회사 넥슨 창립
넥슨은 카이스트 출신 절친한 친구였던 김정주 NXC(넥슨컴퍼니 지주회사)대표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등이 공동으로 설립한 벤처회사였습니다.
김정주 대표는 컴퓨터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프로그래머’였고, 송재경 대표는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청년이었습니다.
사실 넥슨은 김 대표의 첫 번째 회사가 아닙니다. 창업과 실패, 학교 복귀와 재창업의 도전을 계속 한 이후 넥슨을 설립하게 됩니다.
넥슨은 당시로는 최첨단 기술이었던 인트라넷 솔루션 개발이라는 탄탄한 캐시카우가 있었지만 거기서 멈추진 않았습니다. 정해진 미래가 아닌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텍스트 머드든, 쥐라기 공원이 잘 되고 있어서, 우리도 하면 당연히 더 많이 벌지 않을까? 우리는 그림도 나오는데. 이런 소박한 꿈으로 ‘바람의 나라’ 개발을 시작했어요.어떻게 보면 정주가 친구 잘못 만나서 지금까지 이 고생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2013년 7월 넥슨 컴퓨터박물관 개관 기념 토크쇼에서)”
◇판교 넥슨 사옥, 넥슨은 창립 20년이 된 올해 초에 드디어 '내집'을 마련했다(사진=넥슨)
◇ 2. 1995년 8월. 국내최초의 인트라넷 솔루션 Web Office 1.0개발
현재 넥슨은 한국을 대표하는 온라인게임 회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넥슨은 초창기 인트라넷 솔루션, 소프트웨어 등을 만드는 기업이었습니다.
물론 김정주 대표를 포함한 창업멤버들은 1994년 8월 나우누리를 통해 서비스를 시작했던 머드게임(Multi User Degeon, PC통신 상에서 명령어를 입력해 즐기는 방식의 게임) ‘단군의 땅’ 등을 통해, 온라인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래픽이 들어간 최초의 머그 게임(Multi User Graphic)인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고 있었죠.
하지만 개발비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당시로는 시장도 불확실했던 온라인게임 사업에만 모든 자원을 투자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흔히 사업은 '남의 돈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지금이야 카이스트 출신의 좋은 개발자들이 모여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벤처’라는 말조차 생소했을 때니 벤처투자 환경이 제대로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결국 넥슨은 스스로 번 자금을 통해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했습니다.
투자금을 받지 않았으니 외부 투자자들에게 휘둘릴 일도 없었다는 장점과 사업초기부터 적자가 없는 회사라는 특징도 있었죠.
스스로 만든 운영비, 빚 없는 기업 운영 등은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했던 초창기 넥슨의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 3. 1995년 12월 바람의 나라 베타서비스 실시
드디어 넥슨의 첫 게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람의 나라는 이듬해인 1996년 4월 천리안을 통해 정식 서비스에 돌입하게 됩니다.
바람의 나라에 대한 여러 찬사가 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점도 이후 게임 산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바람의나라 초기화면(사진=넥슨)
“초기의 바람의 나라는 머드 게임에 그래픽을 도입한 정도였지만, 다른 머그게임에 비해 유저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요소들을 다수 도입했으며, 1998년에는 캐릭터끼리 결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한국게임의 역사(윤형섭 외 공저, 북코리아)>”
“바람의 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명령어를 살펴보니 게임 친구를 확인할 수 있는 ‘ctrl+W’였어요. 나의 친구들을 소환할 수 있고, 결혼할 수 있고, 싸울 수 있는 최초의 소셜 게임이라고 우겨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게임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같이할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람의 나라”라 참 뿌듯합니다(김정주, 2013년 7월 넥슨 컴퓨터박물관 개관 기념 토크쇼에서)”
◇ 4. 1997년 8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넥슨아메리카 미국법인 설립'
초창기 넥슨의 가장 놀라운 부분 중 하나는 좁은 한국 시장에만 머물지 않고, 일본, 미국, 유럽 등 해외 시장에 끊임없이 도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스타트업 게임사가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리기 쉽지 않은데, 당시로써는 정말 파격적인 행보인 셈입니다.
특히 김정주 대표는 일본에서 ‘닌텐도를 꺾고 최고의 게임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넥슨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온라인게임의 가능성 ▲해외 시장 공략은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도전해야 하는 것 등의 교훈을 얻게 됩니다.
◇ 5. 1998년 1월 어둠의 전설 국내상용화
“넥슨은 어둠의 전설 발표를 즈음해 게임의 본고장이라는 미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말하자면 어둠의 전설은 국내용이라기 보다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을 겨냥해서 만들어졌다는 말이 된다.
(중략) 여타 게임회사에 비하면 다양한 라인업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 넥슨의 행보는 정말 혜안이었다고 볼 수 있다.<넥슨만의 상상력을 훔쳐라(박정규 저, 비전코리아)>”
◇현재도 어둠의 전설은 서비스되고 있다(사진=넥슨 홈페이지)
어둠의 전설 이후 넥슨은 매년 특정 연령, 특정 계층을 겨냥한 ‘맞춤형’ 게임들을 계속해서 선보입니다. 장르도 RPG에서, RTS(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퀴즈, 레이싱 등으로 온라인게임의 카테고리를 개척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는 당시 넥슨의 성공 이후 ‘투자’를 받아 “일단 무조건 필드에 몬스터 뿌리고, 레벨업 되는 RPG온라인 게임 만들어”라고 접근한 대다수의 후발 주자들과는 다른 행보였습니다.
한편, 당시 국내 온라인게임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세 가지가 꼽힙니다. 우선 국가에서 초고속 통신망을 의욕적으로 보급해 인프라가 갖춰진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IMF로 실직자가 대량 생산돼 이들이 PC방 창업에 뛰어든 점, 불법 패키지 게임의 범람으로 개발자들이 온라인 게임 개발에서 희망을 찾은 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암울했던 시대의 상황이 오히려 온라인게임 발전을 가져온 것이죠.
◇ 6. 1999년 1월 엠플레이 설립
넥슨은 1999년 사내 팀을 독립시켜, 독자적인 법인인 ‘엠플레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정상원 현 넥슨 부사장이 직접 엠플레이 대표를 맞아 조직을 진두지휘하게 됩니다.
성공한 벤처기업들은 덩치가 커진 이후 일부 조직을 분사시키거나, 별도의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 기민한 움직임을 통해 빠른 트렌드를 주도해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같은 의도가 성공한 것인지, 엠플레이는 이후 '퀴즈퀴즈'를 통해 전 세계 온라인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준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또 당시 넥슨은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는 기업 분위기를 계속해서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김정주 대표의 경영 철학에 따라 직원들이 독립해 회사를 차리면 응원해주고, 힘들 때는 다시 인수해주기도 하는 독특한 집단의 성격을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웬 마호니 넥슨 일본 법인 대표는 “당시 서구 게임사는 ‘기업화’됐고, 수익성 향상을 위해 히트작들의 후속편들을 계속 찍어 냈죠. 그런데 넥슨은 달랐어요"라며 "넥슨은 '재미있는 것을 해보자'라는 생각에 모든 팀원이 좋은 아이디어와 비전을 공유하고 있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 7.1999년 7월 세계 최초 3D 인터넷 전략시뮬레이션, '택티컬 커맨더스' 발표
최근 정상원 넥슨 부사장이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2014에서 후속작에 대해 언급해 마니아들을 설레게 한 문제(?)의 작품입니다.
역대 넥슨의 모든 게임 중에 가장 중독성이 강하고, 어렵고, 독특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 택티컬 커맨더스(이하 택컴)이기 때문입니다.
택컴은 스타크래프트 같은 RTS에 RPG요소를 도입한 게임입니다. 국내에서는 당시 혜성처럼 등장한 ‘포트리스’에 밀렸지만, 해외에서는 미국 게임지 'PC GAMER- 최고의 게임(Great Games)’란에 소개되는 등 각종 상을 휩쓸며 ‘넥슨’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택티컬커맨더스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인정을 받은 작품(사진 = 택티컬커맨더스 미국홈페이지)
하지만 택컴은 이후 서비스 과정에서 유저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게임을 즐겼던 사람들은 아직도 RTS 게임에서 일부 유닛을 부분유료화하는 밸런스 붕괴와 각종 게임 핵을 막지 못한 넥슨 탓을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게임성을 해치지 않는 수익모델 구축과 안정적인 게임 운영의 어려움을 넥슨에게 가르쳐 준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 8 . 1999년 10월, 세계 최초 인터넷 퀴즈게임 '퀴즈퀴즈' 발표
“대표적인 온라인 퀴즈 게임으로 지난 10월 15일 정식으로 문을 연 ‘퀴즈퀴즈는 60만명의 회원(아이디 기준)이 가입했다. 하루 1만명씩 회원이 늘어나는 셈이다.
매 순간 1만명의 회원이 동시에 게임을 즐기고 있을 정도니 대학가에서는 이 게임을 모르면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다<나는 퀴즈게이머, 정답만 클릭한다(한겨레, 1999년 12월 15일)>”
넥슨에서 독립한 엠플레이가 만든 게임이 이 퀴즈퀴즈입니다. 당시 온라인게임 수익 모델은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받는 ‘정액제’가 전부였습니다.
퀴즈퀴즈도 폭발적인 인기와 더불어 2000년 1월 상용화(1개월 1만6500원, 3개월 3만3000원)했지만, 다음달 1개월 7700원 3개월, 1만6500원으로 가격 인하를 단행했지만 정액제 서비스 모델을 1년 넘게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퀴즈퀴즈는 이듬해 3월 전 세계 최초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시도합니다.
2001년 3월경 아이템 유료 판매를 시작하는데,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아이템 판매 10일 만에 7000만원, 한 달 만에 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합니다.
◇2000년 당시 주요 게임사들의 연매출. 2000년 대 초반은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사진= 정보통신산업동향 인터넷 컨텐츠 2001. 8)
그리고 퀴즈퀴즈는 2001년 7월 전면무료화를 선언합니다. 역사상 최초의 ‘부분유료화’ 게임이 탄생한 셈이죠.
사실 퀴즈퀴즈 부분유료화 배경에는 PC방과의 갈등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PC방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여러 온라인게임의 PC방 정액서비스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퀴즈퀴즈는 당시 포트리스와 더불어 캐주얼게임으로는 아주 높은 PC방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RPG도 아닌 퀴즈게임을 유료로 공급하던 넥슨은 PC방 점주들에게 미운 털이 박힐 수밖에 없었죠.
부분유료화 성공 이후 넥슨은 PC방에 퀴즈퀴즈를 무료로 공급하게 됩니다만, PC방과 넥슨의 갈등은 이후에도 계속 넥슨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 9. 2000년 2월, 휴대폰용 멀티플레이 게임 '코스모노바' 세계 최초 시범서비스 실시
현재 넥슨은 스마트폰 게임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모바일게임 도전의 역사는 아주 긴 편입니다. 넥슨이 처음 선보인 코스모노바는 WAP브라우저가 내장된 PCS폰을 이용, 제국을 건설하고 통치자가 되는 게임이었습니다.
당시 넥슨 관계자분은 “단말기만 있으면 이동 중에도 게임을 즐길 수 있어 기존의 PC용 게임에 비해 파급효과가 클 것 "며 "앞으로 1,2년 이내에 무선 인터넷 게임 시장은 유선 인터넷 게임 시장을 따라잡을 만큼 급성장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너무 앞서가는 예측이긴 했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초창기 넥슨의 공격적인 자세를 알 수 있는 말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 10. 2000년 초반, 본격적인 ‘기업가’의 길을 걷다.
게임업계에 따르면 김정주 NXC 대표는 2000년도 초반부터 넥슨에 자신이 출퇴근하는 책상을 두지 않았습니다. 넥슨 내부의 일은 믿을 수 있는 직원들에게 맡겨두고, 자신은 넥슨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기업을 찾아 나섭니다.
김정주 대표의 오랫동안 같이 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라는 경영철학이 넥슨의 테두리를 벗어난 셈입니다. 마치 폐관 수련을 마친 무림의 고수가 본격적으로 강호로 떠나가는 듯한 그런 느낌도 듭니다.
지난해 7월 바람의 나라 원년 멤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넥슨 컴퓨터박물관 개관 기념 토크쇼. 김영구 넥스토릭 대표, 서민 넥슨 대표, 김정주 엔엑스씨 대표, 김진 바람의 나라 작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김경률 애니파크 개발실장, 정상원 띵소프트 대표, (좌측부터, 사진=최준호 기자)
해외 사례를 봐도 통신·미디어·인터넷 등의 사업에서 인수합병(M&A)을 통해 급속도로 회사가 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넥슨은 국내를 대표하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2000년대 넥슨의 황금기를 이끈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등은 모두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넥슨이 손에 넣은 IP(지적재산권)입니다.
지금까지 1994년 창립부터 2000년 까지 넥슨을 만든 결정적인 10장면을 살펴봤습니다. 대부분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도전들이었고, 이 같은 벤처 정신은 국내 온라인게임 산업성장의 중요한 밑거름 역할을 했습니다.
다음편에서는 2000년 초중반 넥슨의 황금시대와 일본시장 상장, 모바일 시대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