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온고지신)①깨진 도자기..희망은 있다

입력 : 2014-09-23 오전 9:46:58
[뉴스토마토 이지은기자] 사양산업이라는 오명 속에 고군분투 중인 도자기업계. 중금속 파동, 소비심리 위축 등 갖은 악재로 내수 경기는 그야말로 바닥이다. 게다가 저가 중국산과 고급 유럽산 도자기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 업계 2강인 행남자기와 한국도자기는 그럼에도 70여년을 버티고 있다. 소규모 제조업체들도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소비자와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 내리막길을 치닫는 도자기에 대한 소비자 시선과 각 사의 전략, 그리고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편집자) 
 
9월 중순 추석 대목이 지나간 남대문 그릇 시장은 한산했다. 그릇에 먼지라도 쌓일까 점주들은 총채(가는 막대에 말총이나 헝겊, 새털 따위를 매어서 만들어 먼지를 터는 데 쓰는 기구)로 식기 보듬기에 바빴다.
 
도자기를 주력으로 파는 A상점 관계자는 "세월호 등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됐고, 지난 5월에는 도자기 중금속 검출 파동까지 겹치면서 상반기 장사를 망쳤다"며 "올해는 윤달까지 껴 가을 혼수철 장사도 예년만 못하다"고 토로했다.
 
매출도 내림세다. 5년 전보다 절반가량, 많게는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생활자기만을 팔다가 냄비 등 주방기기로 제품을 다변화한 곳도 부지기수다.
 
소상공인의 매출 급감은 도자기 제조사 실적으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악화일로 걷는 도자기업계..中·歐 샌드위치 신세 
 
70여년 넘게 업계를 이끌어온 행남자기(008800)와 한국도자기는 악화일로다.
 
행남자기는 지난 2011년 536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이후 2012년 460억원, 지난해에는 438억원으로 줄었다. 한국도자기 역시 2011년 489억원이었던 매출이 2012년 465억원, 2013년 404억원으로 감소했다.
 
◇행남자기와 한국도자기의 매출 추이. (자료=각 사)
 
업계에 따르면 양사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5000여개에 이르는 도자기업계 대부분이 매출 급감을 겪고 있으며, 또 이중 상당수는 올해 문을 닫은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1인 가구 증가와 외식문화 확산으로 홈세트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고, 장기적인 소비경제 침체에 따른 결과다. 더불어 도자기 중금속 검출 파동까지 더해지며 업계 전반에 대한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했다.
 
여기에다 중국과 유럽 사이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면서 제 위치를 잃었다. 국내 생산을 고집하다 보니 중국의 저가상품에 밀리고, 본차이나 등 고급 제품은 유럽산과 품질 면에서는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브랜드 인지도에 밀려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쉽게 카피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다 보면 중국 등 저가시장에서 미투제품이 빠르게 나와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형태 등을 다양화해 독특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정도(正道)지만, 제품 자체만으로 유럽 브랜드와 경쟁하기에는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소규모 업체들은 '울상'..젊은 층 눈길은 '고무적'
 
소규모로 생활자기만을 취급하는 업체들은 더 울상이다. 업계 전반에 감도는 불황은 더 이상 체감키 어려울 정도의 현실이 됐다. 
 
이들은 나름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고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개성을 중요시하는 젊은 소비자들까지 공략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지만, 소규모로 전 과정을 수공예로 만들다 보니 가격단가를 낮추기가 어렵다.
 
2대째 도자기 가업을 잇고 있는 Y업체 유모 사장은 "가족끼리 소규모 공장을 운영하며 수공예로 제품을 만들고 있다"며 "손님들은 저가 제품을 많이 찾지만, 수공예로 만들다 보니 저가 제품보다 2~3배 가격이 높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 때보다 매출이 절반가량 급감했지만, 전통방식을 고수하려 한다"며 "현대 자기와 접목시켜 특색을 살리려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20년째 도자기를 만들며 판매하는 M업체의 정모 사장은 "소규모 업체의 경우 전부 수공예로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 만드는 제품들과 가격 경쟁력을 펼칠 수 없다"며 "가격 대신 수공예 특성을 살려 개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를 공략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자기는 '공예'이며, 공예는 예술과 쓰임이 합해진 것이라며, 수공예만의 독특함에 매혹을 느낀 젊은층 소비자가 늘고 있는 점는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천도자기축제에서 판매된 제품들. (사진=뉴스토마토)
 
◇깨진 도자기 희망은 있다..도자기 축제 관람객 '봇물' 
 
내우외환을 겪고 있지만 희망은 있다는 것이 업계 전반의 의견이다. '고려청자'의 나라인 한국 업체들이 판로 개척과 디자인 개발에 힘쓰고 있고, 소비자의 관심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도자기 축제인 '이천도자기 축제'는 지난 21일 33만명이 축제장을 찾는 등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해 11만명이 축제장을 찾았던 것에서 올해는 22만명가량이 늘어났다.
 
또 26회째를 맞이하는 '여주도자기 축제'는 주말 동안 7만9000여명의 방문객 몰이에 나서며, 다음달 12일까지 진행된다. 주최 측은 지난해 방문객 20만명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축제를 찾은 관람객도 젊은층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했다.
 
이천도자기 축제에서 만난 오세정씨(33)는 "아이를 키우고 있어 친환경 식기에 관심이 높아 축제를 찾게 됐다"며 "투박하지만 친환경적 제품이라 생각돼 주방식기 중 도자기 비율을 늘려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청주에서 축제장을 찾은 박덕자씨(54)는 "전통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 공방을 통해 직접 도자기 제품도 만들고 있다"며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제품이 나올 수 있고, 집안 인테리어로도 제격"이라고 말했다.
 
◇이천도자기 축제 현장. (사진=이천도자기축제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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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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