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서 서럽다 말도 못하는 원전 비정규직

입력 : 2014-10-07 오후 4:00:11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비정규직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문제가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동안 '숙련된 전문인력이 조작하는 안전한 원전' 이미지에 가려진 탓에 원전 비정규직 문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처우는 다른 비정규직보다 훨씬 열악했다. 정규직보다 5배 많은 방사능을 맞고 있었지만 공고한 원전 마피아 탓에 어디 가서 서럽다는 말도 못 꺼내는 처지다.
 
7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원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7월 기준으로 원전에서 일하는 총 1만9693명의 인력 가운데 정규직은 6771명(34%)였고, 비정규직은 1114명(6%)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비정규직은 한수원 직접고용과 간접고용 등이며, 외주·하청업체 인력을 포함하면 실제 비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는 인력은 1만2992명이나 된다. 특히 이는 지난 5년간 40% 정도 오른 것인데 같은 기간 정규직이 13%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3배나 많다.
 
극도로 민감한 원자로와 복잡한 기능으로 이뤄진 원전은 고도로 숙련된 전문인력이 다룰 것이라는 일반의 인식과 달리 실제로는 미숙련 비정규직의 작업 참여율이 더 높은 셈.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1·2호기(사진=뉴스토마토)
 
한수원에 따르면 원전 비정규직과 외주·하청인원은 원전 정비, 원전 폐·용수 처리, 기타 청소·경비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데 한수원 정규직보다 임금이 30%~40%에 불과한 것은 물론 정규직에 비해 복지수준이 떨어지고 작업환경 역시 열악했다.
 
실제로 원전에서 종사하는 비정규직의 방사능 피폭량은 정규직에 비해 5배 정도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수원에서 작성한 '한수원 종사자 피폭량 및 출입 방사선 종사자 피폭량 조사결과'를 보면, 지난해 한수원에 출입한 외주·하청업체 종사자의 방사능 피폭량은 1인당 0.64m㏜였지만 정규직 종사자의 1인당 방사능 피폭량은 0.13m㏜였다.
 
다른 작업환경 역시 위험천만하다. 올해 1월에는 전남 영광군 한빛 원전에서 방수로 작업을 하던 비정규직 1명이 익사했다. 방수로는 원자로를 식힌 냉각수를 배출하는 곳이지만, 당시 이들은 전문 잠수원도 아니고 제대로 된 잠수장비도 없이 작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일부 원전에서는 5년 이상 장기간 일한 비정규직이라고 할지라도 단순 병치레 등을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사례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위험한 일은 다 맞아 처리했으면서 필요 없으면 그냥 버려지는 꼴이다.
 
이처럼 원전 비정규직과 외주·하청업체 직원들은 목숨을 내놓고 일을 하지만 안전관리는 매우 취약하고 고용불안에까지 시달리는 실정이다. 하지만 외주·하청업체의 영세성, 한수원과 원전 공기업으로 이뤄진 공고한 원전 마피아에 막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실제로 민주노총에 따르면 원전 비정규직 문제가 수면 위로 불거진 것은 아주 최근부터고, 비정규직 스스로 처우개선에 대해 주장하고 나선 것 역시 올해가 거의 최초라는 것.
 
민주노총 관계자는 "최저임금을 겨우 넘기는 임금과 고용불안, 위험한 근무환경을 개선하려고 해도 한수원 등의 고용 협박 등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마다 국정감사가 다가오거나 원전에서 인력사고 발생하면 국회에서도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빛 좋은 개살구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양산하는 고용문제와 원전 마피아, 공공기관 민영화 등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어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한국전력과 한수원이 분리된 전력산업 구조개편 후 한수원의 불법파견이 활개치고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원전 비정규직의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데 정작 공공부문 민영화로 노동자들을 짓밟아온 게 누구였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녹색당 역시 성명을 내고 "위험한 현장작업을 맡고 있지만 처우는 정규직에 비해 상당히 열악한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며 "한수원→용역업체→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고 안전관리 부분부터 일차적으로 정규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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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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