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국내 정유사들이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수요 부진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공급과잉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 확실시되면서다.
중동 산유국들이 미국산 셰일가스 견제를 위해 가격인하는 물론 생산량 유지 기조를 나타내면서 국내 정유사들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처지에 놓였다. 뚜렷한 자구책도 없어 속앓이만 깊어졌다.
16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와 북해산 브렌트유, 두바이유는 이번주 들어 일제히 배럴당 80달러대로 하락했다. WTI와 브랜트유는 지난 9월 평균 가격이 배럴당 93.03달러, 98.57달러에 거래되다가 최근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0월 기준 평균 가격은 87.18달러, 90.38달러로 각각 6.2%, 8.3% 하락했다. 국내 도입 원유의 약 8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도 급락세다. 이달 초 배럴당 93.52달러를 기록했으나 불과 보름만에 9.29달러가 빠진 84.23달러(15일 기준)에 거래를 마쳤다. 급전직하다.
◇국제유가 추이.(출처=한국석유공사)
국제유가가 연일 하향세를 타고 있는 것은 중동 산유국의 가격인하 경쟁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달 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아시아에 대한 원유 수출가격을 배럴당 1달러씩 내리겠다고 밝혔다. 미국 수출용 원유도 40센트 낮추기로 했다.
이라크 역시 아시아 수출용 원유값을 지난 2009년 1월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인하한다는 방침을 밝혔고, 이란도 다음달 원유가격을 약 6년만에 최대폭으로 내리기로 하는 등 중동 산유국간의 가격인하 경쟁이 불붙고 있는 모양새다.
문제는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가 뚜렷하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출혈경쟁이 펼쳐지고 있다는 데 있다.
국제에너지구(IEA)가 이날 발표한 월간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원유 수요 전망치는 종전 하루 90만배럴 증가에서 70만배럴 증가로 22%나 하향 조정됐다. 이에 반해 공급 규모는 하루 91만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수요는 감소하고 공급은 증가하는 수급 불균형이 초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셰일가스 양산으로 인한 후폭풍이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이 미국산 셰일가스를 견제할 목적으로 수급조절 대신 '치킨게임' 전략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미국산 셰일가스 공급 증가를 견제하기 위해 중동 산유국들이 감산 대신 공급유지 전략을 택하고 있다"면서 "가격하향 움직임이 일시적인 현상일지, 고착화될지 여부는 3~4개월 더 추세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유국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분위기는 원유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국내 정유사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가 바닥을 헤메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유가마저 급락세로 돌아서면서 수익성에 비상등이 켜졌다.
통상 단기간의 국제유가 변동은 영업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1분이 이상 지속될 경우 원유 비축분과 재고평가에 손실을 끼친다.
특히 원유 도입과 석유제품 판매 시기의 시차가 평균 한달 정도 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유사들은 배럴당 90달러에 원유를 구입, 80달러에 내다팔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국제유가 급락에 제동이 걸리지 않을 경우 국내 정유사들은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정유사업에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와 올해 중동발 리스크로 유가가 상승했음에도 수요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조직 슬림화 등의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지만, 대규모 장치산업이다보니 대응책에도 한계가 있어 고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