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이 추가양적완화 결정을 한 지난달 31일 서울 명동 외환은행 딜링룸 모습.ⓒNews1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기업들이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우는데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의 3분기 실적이 '어닝쇼크'로 이어진 가운데 내년 경기 전망도 불투명하기 때문.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끝내고 일본은 추가적인 양적완화에 나서면서 환율변동성은 올해보다 내년이 더 확대될 전망이다. 여기에 최대 시장인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예상치(7.5%)를 밑돌고 내년 역시 성장폭이 둔화될 것이 예고돼 있다. 신규투자는 물론 종전의 사업에 어떤 변화를 줄지도 감을 잡기가 쉽지 않다.
특히 3분기마저도 우울한 성적표를 확인한 기업들은 보다 과감한 사업계획과 함께 조직 인사에서도 혁신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 변동성이 극대화되면서 파격적인 사업전환보다는 사람에서 출발하는 개혁이 우선될 전망이다.
삼성그룹은 핵심계열인 삼성전자가 3분기에 4조원대에 겨우 턱걸이한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어느 해보다 강도높은 개혁을 주문받고 있다.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달 31일 창립 45주년 기념식에서 '세계 톱 수준의 IT기업'임을 자신하면서도 이를 지켜내기 위해 "과감한 도전 정신과 끊임 없는 혁신 의지"를 주문했다. 주력이던 스마트폰사업의 부진에 이미 무선사업부 인력의 이동이 시작됐고, 연말 임원인사에서도 적지 않은 인력의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그룹 미래전략실로부터 경영진단을 받을 예정이다. 실적발표 직후 단행되는 경영진단인 만큼 실적부진에 대한 책임소재 파악과 그에 따른 수익구조 개선안이 도출될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3개월간의 경영진단을 실시했고, 올 2월부터는 넉달 넘게 삼성중공업에 대한 경영진단을 진행했다.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 '합병'이라는 처분을 받아든 상태다.
올해 1분기 8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3분기에는 전년동기대비 93.9%의 영업이익 감소를 기록한 삼성디스플레이도 경영진단 후 조직개편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환율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은 양재동 본사에 있는 글로벌 종합상황실을 중심으로 환율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정몽구 회장이 매달 주요 계열사 사장단 30여명을 소집, 실시하는 수출확대전략회의도 환율변동성 만큼이나 크게 강화됐다. 매년 정회장의 신년사를 통해 공개하는 현대차의 내년도 사업계획의 향방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지난달 27일 수출확대전략회의에서 정 회장은 "연말까지 환율과 해외시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남은 기간에도 올해 목표 달성을 위해 비상한 각오로 뛰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3일 기아차의 이삼웅 사장이 판매량 하락의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하는 등 인적쇄신은 이미 시작됐다. 후임에는 재경본부장 박한우 사장이 임명됐고 신임 재경본부장에는 재경사업부장 한천수 전무가 임명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환율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사업계획을 확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면서 "달러도 문제지만 엔화와 유로화가 더 문제다. 주요 경쟁사들의 가격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주 1박2일간의 일정으로 CEO세미나를 연 SK그룹도 내년 사업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가 선전하면서 외형적으로나마 그룹 전체의 부진이 가려져 있지만, 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전체 그룹사의 실적은 정체가 아니면 하락으로 모아진다. 특히 SK에너지와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석유사업 등에서 손실이 큰폭으로 늘어난데다 내년에는 유가와 환율이라는 대외변수가 더욱 춤을 출 전망이어서 사업계획 수립이 쉽지 않다.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의 부재도 문제다. 혁신의 수준에 맞는 사업구조 개편이나 인적쇄신을 위해서는 최고경영자의 결정이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CEO세미나를 주재한 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강한 사업구조로 혁신하는데 그룹 경영의 중점을 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내년 사업계획은 전체적으로 '안정'에 방점일 찍힐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