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세일' 끝에 새 도서정가제 시행..실효성은

대형서점-중소서점 '도매가 차별' 여전
"책값 불신 해소해야"

입력 : 2014-11-21 오후 4:13:59
[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우여곡절 끝에 21일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에 들어갔다.
 
제도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에는 재고를 털려는 출판·유통업계의 '폭탄 세일 공급'과 책값 상승 전 '막차'를 타려는 독서 소비자들의 '사재기 수요'가 만나 예스24(053280), 교보문고 등 인터넷 서점 사이트가 마비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책값이 오를 것이란 소비자의 막연한 우려와 업계의 상술이 만난 셈이다.
 
이번 제도는 책값 할인 상한선을 기존 19%에서 15%(가격할인 10% + 간접할인 5%)로 조정하는 것이 골자다. 가격 할인폭을 줄여 책의 가격이 아닌 가치로 경쟁하는 문화를 만드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거란 기대가 있다.
 
그러나 ▲제휴 카드·통신사 할인 금지 ▲대형서점과 중소서점간 출판사 도매가 차별 금지 등 중소서점들이 요구한 사안은 끝내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남겼다. 이 두 가지 사항야말로 책값 거품 제거와 중소서점 살리기 등 도서정가제의 취지를 살리는 핵심이었다.
 
(자료=문화체육관광부)
 
◇도서정가제 도입부터 시행까지
 
도서정가제는 출판사가 도서에 정가를 표시하고, 판매자는 표시된 정가대로 소비자에게 판매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 2003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도서정가제는 국민의 양서 접근권을 보장하고 다양한 창작·출판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할인율이 정가의 19%에 달해 선진국의 경우(5~15%)보다 상당히 높고, 적용 예외 조항이 많았다. 정가제를 피해 문학 등 비실용서를 실용서로 등록해 할인 판매하고, 할인을 전제로 가격이 책정돼 책값에 거품이 형성됐다. 이로 인해 가격경쟁이 가능한 대형 출판·유통사만 생존해 소형 출판사는 도태되고 지역의 동네서점이 감소했다. 지역서점은 지난 1994년 5683개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1625개로 급감했다. 동네서점은 독자들이 가까이서 책을 실제로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독서 문화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시장을 장악한  대형 회사들도 어려움에 직면했다. 출판·유통업계의 대표주자 격인 민음사와 교보문고가 적자를 기록했다는 소식은 업계에 충격을 줬다. 인터넷 서점들도 과도한 경쟁 탓에 수익성이 감소했다. 양서 출간을 포기하게 되고, 신간 발행종수도 줄어들고 있다. 초판으로 2000~3000부를 찍던 교양서적이 최근에는 1000부 이하로 찍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에는 최저가 경쟁 입찰에 의한 도서 구매로 염가 도서가 공급됐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최재천 의원은 지난해 개정 도서정가제를 발의했다. 새 도서정가제는 4월 말 정기국회에서 도서정가제 관련 법안(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이 통과했고 시행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도서정가제, 책값 올리나 낮추나
 
새 도서정가제는 책값 할인 상한선을 기존 19%에서 15%로 조정했으므로 체감 책값이 오를 수는 있다. 제도의 대상 범위는 기존에는 포함되지 않던 실용서, 초등 학습참고서를 포함한 모든 도서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도서관도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 이외에는 모두 정가로 책을 구입해야 한다. 단, 사회복지시설은 도서정가제 적용에서 제외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새 도서정가제 이후 도서가격이 평균 220원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문체부의 '학습참고서 가격 변동 예상 동향'을 보면 단행본의 가격상승 효과는 1.5%로 예상된다. 초등 학습참고서의 경우 이보다 높은 2~4%다.
 
지역서점은 기존 할인율이 0~5%이므로 제도 시행 후 가격 상승폭이 작겠지만, 인터넷서점은 기존 할인율이 20~25%에 달해 가격 상승 효과가 5~1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출간 18개월이 지난 책은 정가 변경(재정가)이 허용된다. 출판사들이 재정가를 실시하면 책값은 대폭 내려갈 수 있다. 실제로 정가제 시행 전 146개 출판사가 2993종에 대해 재정가 신청을 했고, 평균 57%의 인하율을 보였다.
 
◇대형·온라인 서점 수익성 개선 기대..중소형 서점 '울상'
 
업계에서는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대형 온라인 서점은 과도한 할인 경쟁을 덜 하게 돼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최광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예스24는 올해 3분기를 시작으로 가파른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며 ▲도서정가제 개정에 따른 원가율 개선 ▲제도 변화와 한계기업 사업 철수에 따른 점유율 확대를 근거로 꼽았다.
 
예스24 주가는 21일 3.55% 상승으로 마감했다.
 
반면 중소 동네서점들은 울상이다. 새 도서정가제 하에서도 책의 도매가격인 공급률은 대형서점보다 20%가량 차별받고 있고, 카드·통신사 제휴 할인이 허용되고 있어 경쟁력 개선에 별다른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홍익문고의 박세진 사장은 "공급률과 제휴할인이 과거와 같아 새 도서정가제 시행 전과 후가 결국 똑같다"며 울분을 토했다. 박 사장은 "동네서점 살리자고 도서정가제 했다는데 동네서점이 돌 맞고 있다"며 "책값 오른다고 소비자들이 인터넷 서점에서 사재기를 해서 어제 하루는 매출이 30%나 줄었다"고 말했다.
 
중고서점을 운영하는 알라딘커뮤니케이션의 조유식 대표는 도서정가제 확대 시행으로 수혜를 입을 것이란 일각의 전망에 대해 "전체 매출 중 중고서점의 매출 비중이 크지 않아 도서정가제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김동훈 기자)
 
◇제휴할인 금지·도매가 조정 합의 못한 '한계'
 
이번 새 도서정가제가 대형서점에 유리한 유통구조를 개선해 중소서점을 살린다는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꾸준히 나왔다. 지난달 16일에도 출판·유통업계는 공청회를 열어 이 법률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정부는 그러나 공급률 등 업계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분간 조정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일환 문체부 출판인쇄산업과장은 "공급률 할인 부분은 출판사와 온라인·대형서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조정을 추진하는 것은 정부의 시장경제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 될 수도 있다"며 "카드 할인과 무료 배송 등은 도서정가제 시행령의 모법이 바뀌어야 하고, 규정상 3년 뒤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재정가는 대형·온라인 서점이나 중소서점에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중소서점도 이것을 소비자 확보 수단으로 봐야 한다"며 "앞으로 추이를 지켜보면서 제도를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형서점 대표들은 말을 아낀다.
 
허정도 교보문고 대표는 "원칙적으로 공급률 조정에 동의하고 있으나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동국 반디앤루니스 대표도 "(공급률 조정을 거부하는 업계의 의견에) 동의했다"고만 답했다.
 
물론 장기적으로 제도가 안착해 가격 경쟁이 줄어든다면 가치로 경쟁하는 다양한 서적이 출간되고, 중소 출판사의 경영도 개선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할인을 전제로 거품 가격을 책정하는 관행이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다. 김정동 서교출판사 대표는 "새 도서정가제 이후에는 할인 경쟁을 하기 어려웠던 도서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제도의 안착을 위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요구된다. 출판계는 지난 19일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을 위한 출판·유통업계 자율협약'을 발표하면서 책값 안정화를 다짐하는 등 제도 안착에 힘을 보태고 있으나 이는 문자 그대로 '자율'이므로 강제력이 부족하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새 도서정가제는 과당 할인 경쟁을 제한적으로라도 제어한다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면서도 "다만, 앞으로 '유사 할인'이 팽배할 가능성이 있고, 시장은 구간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으므로 업계가 가격 거품을 줄여 독자의 책값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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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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