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포스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기자의 친척 중에 한 명은 6.25 전쟁 때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다. "걷고 또 걷고 하다가 서울에 도착했지"라는 아련한 추억을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기자의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외화를 벌러 갔다. 중동의 모래폭풍을 맞으면서 수 년 동안 돈을 벌어왔다. "그 때는 중동이고 유럽이고 가리지 않고 돈을 벌러 다녔어"라고 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기자의 삼촌은 월남전에 파병 갈 뻔 했다. 다행히도 베트남에 가지는 않았다. "갔으면 이렇게 있지 못했을 수도 있지"라며 껄껄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영화 <국제시장>은 이 모든 시대를 관통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격변기라 불렸던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나보다는 내 주위를 위해 온 몸을 다 바쳤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 남자의 이야기가 진한 감동과 눈물을 쏟게 한다.
지난 24일 서울 CGV왕십리에서 <국제시장>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 내부평가가 워낙 좋다는 소문이 곳곳에서 들렸고, 그 이전부터 '천만 영화'라고 평가받아온 터라 발 디딜틈 없이 많은 영화인들이 모였다. 총체작비 180억원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한 남자의 인생을 일대기적으로 다룬다.
덕수(황정민 분)가 10살도 안 된 시절 북의 흥남에서 미군의 배를 타고 부산에 발을 붙인다. 그 과정에서 가족은 막내 딸과 아버지와 생이별을 한다. 아버지는 큰 아들인 덕수에게 "네가 내 대신 가장이다"라며 책임감을 부여하고 배에서 내린다. 그렇게 덕수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된다.
가장이 된 덕수는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 공부를 포기하고 일을 한다. 가족은 많은데 돈은 계속 필요하다. 공부 잘하는 동생은 서울대에 합격하지만 등록금이 없다. 그 때문에 친구와 서독으로 떠난다. 팔자에도 없던 광부가 된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어느덧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일도 적응이 됐다. 그러면서 간호사 일을 하게 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몸은 고되지만 행복을 느끼던 중 눈 앞에서 막장이 무너진다. 목숨을 잃을 뻔 하지만 그래도 잘 살아남고, 한국에서 결혼도 한다.
이제 겨우 살만해지는가 싶었는데 여동생의 결혼자금이 필요하다. 고모의 점포를 지킬 돈도 필요해진다. 또 한 번 목숨을 건다.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으로 떠난다. 베트남엣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다. 그런 중에 한 쪽 다리를 절뚝이게 된다. 그래도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온다.
한 남자의 희생 덕에 하루 한 끼 먹는 것도 힘들어했던 한 가족이 집도 얻고 무사히 가정도 꾸린다. 이제는 잃어버린 가족과 만나고 싶다. 나라에서는 이산가족찾기가 대대적으로 열린다. 수 십년 전 갑작스럽게 이별한 동생 막순이와 아버지를 덕수와 그 가족은 찾을 수 있을까.
◇<국제시장> 스틸컷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국제시장>은 한 남자의 일대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처음부터 눈물을 자극한다. 억지로 짜내는 건 싫다는 충무로의 트렌드와 역행하면서, 초반부터 후반까지 내내 하이라이트의 감정으로 내달린다. 윤제균 감독의 사전에는 담백함이 없어 보인다. "모든 시퀀스가 하이라이트야"라는 한 기자의 말에 공감의 웃음이 터진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에 진부한 연출이다. 울리려고 작정한 영화다. 그 수가 훤히 보이는데 눈물이 난다. 신파를 통해 울림을 주고 공감을 얻는다. 촌스럽고 투박한 방식을 택해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를 잘 만들어야 대작이 된다"는 충무로의 속설이 관통하는 영화가 <국제시장>이다.
<해운대>를 통해 천만 영화 감독이 된 윤 감독의 또 다른 장기는 볼거리다. 이 영화에도 볼거리가 상당하다. 초반부 흥남철수 신, 월남 폭탄 신, 월남 액션 신 등 감동적인 스토리 속에 쾅쾅 터지는 스펙터클이 존재한다. 유머도 잘 살아있다. '천만 영화에는 꼭 있다'는 오달수는 내내 웃음을 몰고 다닌다.
후반부 이산가족찾기 신은 강렬하다. 신파임이 보이는데도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 시퀀스만 놓고서라도 충분히 영화 한 편이 된다. 황정민이 눈물을 쏟기 전에 먼저 눈물을 흘리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이를 먹은 막순을 연기한 무명 여배우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다.
배우들은 하나같이 안정된 연기를 펼친다. 극을 이끌어가는 황정민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옆에서 서포트를 하는 김윤진, 영화의 산소호흡기 오달수는 물론 철딱서니 없는 여동생 김슬기를 비롯 남진 역의 정윤호, 늘 강직한 엄마 장영남과 정감 가는 고모 라미란까지 모두가 내 가족 같다. 연기로 흠 잡을 배우는 한 명도 없다.
윤 감독은 그 시절을 열심히 견뎌온 이 시대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극중 덕수는 윤 감독의 아버지 이름이기도 하다.
아버지라는 진부한 소재에 반전 없는 이야기와 눈물을 자극하는 연출 탓에 기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촌스러움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감동과 울림이 있는 건 분명하다. 천만 관객을 넘은 <7번방의 선물>, <명량>과 궤를 같이하는 <국제시장>. 그 감동이 어디까지 퍼질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