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혁의 스포츠에세이)'잃을 것 없는' 이재명 성남FC 구단주

입력 : 2014-12-02 오후 1:54:41
[성남=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저는 연맹의 부당한 시도에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이재명(50) 성남 시장이 성남FC의 구단주 신분으로 언론 앞에 섰다. 그는 직접 준비한 자료를 펼치며 프로축구연맹의 경기규정 36조 제5항을 '심판비평절대금지 성역'이라고 해석했다.
 
해당 규정은 이재명 구단주가 어긴 것으로 간주되는 부분이다. '인터뷰에서 경기 판정이나 심판과 관련해 부정적인 표현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
 
이와 관련해 2일 성남 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는 긴장감이 팽팽했다. 이재명 구단주의 회견문 발표 직후 이어진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선 날 선 말들이 오갔다. "회견문은 제 손을 떠난 글이니 직접 읽고 해석하시라", "연맹을 그렇게 사랑하시는지 몰랐다" 등의 말이 이재명 구단주에게서 나왔다. 이따금 취재진 사이에선 쓴웃음과 한숨이 뒤섞여 나오기도 했다.
 
◇2일 경기도 성남 시청에서 열린 프로축구연맹 징계 관련 기자회견에서 K리그 심판 관련 경기 규칙이 부당하다고 설명하고 있는 성남FC의 이재명 구단주. ⓒNews1
 
◇SNS에서 상벌위원회까지 '돌직구'
 
시작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이재명 구단주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FA컵에서 우승한 성남이 K리그 클래식에서 오심과 편파 판정으로 강등 위기에 처했다. 내년 시즌 (2부리그로) 강등될 경우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출전도 포기할 수 있다" 등의 내용이 담긴 장문의 글을 썼다. 당시 성남은 바로 다음날 부산아이파크와 강등 여부가 걸린 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재명 구단주는 승부조작까지 떠올릴 수 있는 맥락을 풀어내 '오심'이란 단어를 넣었다. 과거 승부조작 풍파를 겪은 K리그 팬들과 이를 지켜본 언론은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재명 구단주는 "특히 8월17일 부산전(2-4패)과 10월26일 울산현대전(3-4패)이 오심으로 피해를 본 사례다. 힘없는 성남 시민구단이 당한 설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부정행위가 얼마나 한국 체육계의 발전을 가로막았는지 경험했다"고 썼다.
 
이재명 구단주의 발언을 놓고 여론이 갈리기 시작했다. 대다수 언론은 이재명 구단주의 발언을 연이어 비판했다. 특히 지난달 29일 오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성남과 부산의 경기 직후에는 경기 못지않게 이재명 구단주가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와 기사 댓글을 중심으로 한 축구팬들의 목소리는 달랐다. 팬들은 "구단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다", "소신 있는 모습이다" 등의 반응을 내놨다.
 
다만 이재명 구단주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프로축구연맹 회장'으로 잘못 지칭한 것과 부산 구단주인 정 회장이 부산과의 경기를 지켜보자 이해할 수 없는 페널티킥이 나왔다는 식의 '승부조작' 제기는 다소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끝내 사달이 났다. 프로축구연맹 이사회는 지난 1일 이재명 구단주의 페이스북 글을 인터뷰와 비슷한 공식 입장으로 해석했다. 이 구단주가 심판 판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고 해석해 상벌위원회에 부쳐 징계를 논의하기로 했다.
 
◇이재명 구단주(왼쪽)와 김학범 감독. ⓒNews1
 
◇잃을 것 없는 '소송 불사'
 
이재명 구단주는 기자회견에서 "소송까지 마다치 않겠다"고 밝혔다. '국민 세금'과 '표현의 자유' 등의 단어를 꺼내며 축구계 안만의 문제가 아닌 국민적 문제라고 풀이했다. 프로축구연맹이 징계를 내릴 경우 제소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이후에도 제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법으로 끝까지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장 안에서나 끝나고 난 직후에 판정 불만은 리그 운영을 어렵게 할 수도 있지만, 그 외에는 충분히 판정에 대해 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시장이자 정치인의 모습이 엿보였다. 변호사 출신인 이재명 구단주는 판세를 완벽히 읽었다.
 
이번 사안에서 이재명 구단주가 잃을 것은 없다. 굳이 꼽자면 자신을 계속해서 비판할 몇몇 언론의 보도다. 사실 이 또한 '이재명'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다.
 
설령 그가 자신의 의도를 펴지 못하고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징계만 받더라도 개인적으론 남는 게 많다. 적극적인 구단주의 이미지와 성남을 위했다는 시장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챙길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재명 구단주의 SNS 발언은 계산된 행동일 수도 있다. 구단주 이전에 시장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는 프로축구연맹과 대립각을 세우고 축구팬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동시에 시민구단인 성남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실제 그의 페이스북 담벼락엔 이번 사태와 관련한 기사들이 끊임없이 공유됐다. 비판하는 기사에는 그를 지지하는 이들의 날카로운 비판이 재차 더해졌다. 그의 태도를 관망하는 보도에는 "시장님 힘내세요" 등의 더욱 열렬한 지지가 따랐다.
 
아직 국내 프로 스포츠계에서는 구단주가 징계를 받은 적이 없다. 만약 이재명 구단주에게 징계가 내려지더라도 그는 연맹이라는 거대한 집단에 맞서 싸운 최초의 구단주로 남을 수 있다.
 
프로축구연맹과 이를 대하는 이재명 구단주의 잘잘못은 지금 당장 평가하기 어렵다. 꽤 긴 시간 입방아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 과정에서 프로축구연맹은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됐다. 반면 이재명 구단주는 결과를 불문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을 기회를 스스로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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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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