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사진 저작권, '창작성' 없으면 무용지물

법원 "누가 찍어도 비슷..저작권 인정 어렵다"

입력 : 2014-12-04 오후 5:28:46
[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풍경사진에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산·나무·돌 등의 풍경은 누가 촬영하더라도 같거나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앞서 지도·그림·광고사진·제품사진에 대한 저작권 공방은 있었어도 풍경사진은 처음이다.
 
◇'솔섬' 찍은 케나, 항소심에서도 대한항공에 패소
 
영국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는 2007년 2월 인근 해수욕장의 감시탑을 촬영한 후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솔섬을 발견했다. 도로에 차를 세운 후 뚝방을 걸어 다니면서 적절한 촬영장소를 찾다가 물가로 내려가 1시간 30분 정도 머무르면서 솔섬을 얻었다.
 
솔섬의 원래 명칭은 속섬이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 위치한 속섬은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무인도다. 케나가 소나무가 있는 섬(Pine tree)이라는 뜻의 작품명을 붙인 뒤 솔섬으로 유명세를 탔다.
 
삼척시가 홈피에지를 통해 '원덕읍 월천리에 있는 속섬은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마이클 케냐의 작품이 발표되면서 유명해진 곳'이라고 홍보할 정도다.
 
2009년 솔섬 인근에 생산기지 건설이 확정됐을 때 시민단체들은 케나의 사진을 앞세워 솔섬 보존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삼척시가 홈피에지를 통해 '원덕읍 월천리에 있는 속섬은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마이클 케냐의 작품이 발표되면서 유명해진 곳'이라고 홍보하고 있다.(사진=삼척시 홈페이지)
  
당시 아마추어 사진가들 사이에서는 케나의 솔섬 사진 따라잡기가 유행이었다. 그와 비슷한 촬영각도, 셔터스피드, 조리개 조절 등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고 서로 이를 공유했다.
 
이로부터 4년 후인 2011년 대한항공(003490)은 '우리(에게만 있는) 나라'라는 카피를 담은 15초짜리 광고에 솔섬을 연상케하는 사진을 사용했다. 이는 2010년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 입선한 50여점의 작품 중 아마추어 사진가 김성필 씨가 찍은 '아침을 기다리며'라는 사진이다.
 
이에 케나는 대한항공 광고 속 사진이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며 그의 한국 에이전시인 공근혜갤러리를 통해 대한항공을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줬다.
 
공근혜갤러리 측은 즉각 항소했고 변호인단을 재정비했다. 원심에서 법무법인 정률의 조상규·김민수 변호사에 이어 항소심에서는 법무법인 세종의 문진구·송재섭·임상혁·최자림 변호사로 교체했다.
 
하지만 항소심 역시 대한항공의 승리로 끝났다. 4일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이태종 부장)의 심리로 열린 선고공판에서 공근혜 대표가 대한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자연물은 누가 찍어도 결과물 비슷"
 
대한항공은 문제의 광고에서 김씨의 사진 밑에 속섬이라는 원래 이름 대신 솔섬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대한항공이 저렴한 아마추어 작가를 통해 솔섬과 비슷한 작품을 촬영해 케나의 유명세를 이용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변론 전체 취지를 종합하면 솔섬이라는 명칭이 원래 이름인 속섬보다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광고가 케나의 솔섬 사진에서 표현하고 있는 솔섬에 대한 예술적 가치나 의미, 그에 대한 케나의 명성에 편승해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케나측이 "김씨가 솔섬 사진의 존재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모방해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항공측은 "동일한 피사체를 촬영하는 경우 자연물이나 풍경을 어느 계절,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 어떤 앵글로 촬영하느냐의 선택은 일종의 아이디어"라며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실제 케나의 작품이 탄생하기 1년 전인 2006년 '제2회 삼척관광사진공모전'에서는 케나의 사진과 비슷한 '호산의 여명'이 입상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에 따르면 풍경 사진 작품의 표절 여부를 가늠하는 지표는 창작성이다. 사진 작품이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피사체 선정 ▲구도설정 ▲ 빛 방향과 양의 조절 ▲카메라 각도 설정 ▲셔터 속도 ▲촬영순간 포착 ▲현상 및 인화 등의 과정에서 촬영자의 개성과 창조성이 안정돼야 한다.
 
◇(왼쪽 위)마이클 케나의 '솔섬' (왼쪽 아래)대한항공 광고로 쓰인 김성필씨의 '아침을 기다리며'(오른쪽)제2회 삼척관광사진공모전에 당선된 '호산의 여명'(사진=서울고법 및 속초시 홈페이지)
   
재판부는 케나의 솔섬사진과 김씨의 공모작에 대해 "전체적으로 케나 사진은 수묵화와 같은 정적인 인상을 주는 반면 대한항공은 일출의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며 "차이가 명백하므로 유사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창작적 표현 형식에 해당하는 요소를 분리해 각각 대비하거나 저작물을 전체적으로 대비하는 두 가지 방법 모두에 의해 비교해봤을 때 두 작품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었다.
 
무엇보다 피사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연물이라는 점이 참작됐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대상이므로 촬영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는 창작성이 인정되지 않다는 것. 대신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장소나 구도를 선택해 자연물을 촬영한 경우는 창작성이 있다고 인정된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하면서 두 작품에 국한하지 않고 사진촬영이라는 창작활동으로 저변을 넓혀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솔섬 자체와 솔섬이 호수에 반영된 형태를 저작권법으로 인정한다면 다른 창작자들의 창작 활동에 제약이 가게 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번 판결에 대한 사진가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는 오모(36세) 씨는 "사진을 찍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수긍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며 "사진은 예술인데 재판부가 창작요소가 얼마나 더해졌는지에 대해 이론적으로만 판단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사진 애호가인 임용옥(29세) 씨는 "좋은 사진을 보면 저렇게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패러디는 있을 수밖에 없다"며 "완벽히 같은 조건에서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같은 사진은 나올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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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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