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명 (사진제공=tvN)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일에서는 실수가 없었다. 비록 초반에는 까칠했지만, 어느덧 가까워진 후배 장그래(임시완 분)에게는 수 없이 다정다감했다.
상사의 잘못된 점이 보이면 가차없이 직언을 던졌고, 그럼에도 상사가 결정을 내리면 두 말하지 않고 함께 일을 추진했다. tvN 드라마 <미생>에서 누구보다도 완벽한 후배이자 직장인이었던 김동식 대리는 회사를 다녀본 사람에게는 '판타지'와 같은 인물이다.
감정의 폭이 크지 않게 무던히 혹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한 발 한 발 나갔던 김동식 대리를 연기한 김대명을 지난 19일 추운 저녁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이렇게 추운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한 마디를 던지는 그에게서 김동식 대리의 푸근함이 전달됐다.
인터뷰를 많이 해본 경험은 없어서인지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지는 않았지만, 일관성이 있는 대답과 진실된 화법에서 김동식 대리와 다름을 느끼지 못했던 김대명을 봤다.
◇김대명 (사진제공=tvN)
◇"희생하는 김동식을 닮고 싶다"
웃기기도 하고, 진중하기도 한다. 영업3팀에서 김동식은 후배를 이끌고 상사를 보좌하는 중요 인물이다. 원작에서 인간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드라마가 되면서 더 진해졌다.
"김동식은 따뜻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어요.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을 만들고 싶었어요. 전혀 새로운 사람이 아니라 저런 사람은 어디서나 있다는 느낌이요."
하지만 김동식 같은 직장인은 쉬이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많이 보이는 직장인은 자원2팀의 정 과장(정희태 분), 유 대리(신재훈 분), 하 대리(전석호 분)이다. 섬유1팀의 성 대리(태인호 분)도 종종 볼 수 있다. 겁많고 불만많고, 때로는 성질이 지나치게 세거나 후배를 자신의 몸종으로 생각하는 직장인이 많다. 물론 강대리(오민석 분)나 김동식 대리 같은 사람들도 볼 수 있지만 많지는 않다.
"윤태호 작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영업3팀 자체가 판타지라고요. 제가 봐도 김동식처럼 살라고 하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첫 1~2회에서의 김동식과 마무리가 된 뒤의 김동식은 톤이 많이 다르다. 1~2회에서의 김동식은 무서운 선임이었다. 장그래에게 "도데체 뭘했길래 26세 동안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하기도 했고, "너 새대가리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인간적인 김동식은 처음에 무척이나 차가웠다.
"사람이 어떻게 한 톤으로 사나요. 화도 내고 그러는 거죠. 김동식 입장에서는 일당백인 회사에서 둘 밖에 없고, 그 와중에 보낸 사람이 검정고시 출신이잖아요. 할 줄아는 것도 없는 장그래를 보면서 '일만 늘어나겠군'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죠. 그 상황에 '반갑다'고 하면 성인군자죠. 김동식이 그저 인간적인 사람이 아니라 '센' 사람 혹은 쉬운 사람은 아니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김대명은 <미생>이 '평생을 따라다닐 친구'라고 표현했다. 아마도 그럴테다. 완전히 다른 삶이 그의 인생 앞에 놓여져있다. 김동식 대리는 어떠냐고 물으니,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부분과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는 용기는 닮고 싶어요. 전 그렇지는 못하거든요. 반대로 사람에 대한 태도나 일할 때 모질게 하는 점, 장난도 자주치고 인간적인 건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해요."
◇김대명 (사진제공=tvN)
◇"달라진 인기..달라질 수 있는 내면을 경계"
배우 김대명은 <미생>이 있기 전까지는 무명배우였다. 그리고 연기파 배우였다.
<더테러라이브>에서 하정우를 괴롭히는 목소리를 연기하기도 했고,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몸을 파는 여고생들의 포주였다. <역린>에서는 약육강식의 시대에 철저하게 순응한 인물이었으며, <표적>에서는 순박한 형사였다. 굵직한 영화에 다수 출연했지만, '김대명'하면 딱 알아채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테다.
그런 그가 평생 따라다닐 친구 <미생>을 만났다. <미생>에서 인기를 드높이자 영화 <판도라>에도 출연을 확정지었다. 김남길과 함께 가장 비중이 큰 역할이라는 후문이다.
그저 몇 신만 등장했던 그가 이제는 주인공으로서 극을 이끌어나가는 위치로 단숨에 올라섰다. 달라진게 많겠다 싶었다. 하지만 김대명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저는 별로 변하지 않아요. 변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인지도도 그렇게 별로 염두하지 않아요. 사실 달라지는 것도 없지 않나요. 알아보는 사람들이 더 늘어난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더 저 자신을 경계하는 편이에요. 겁도 많거든요. 늘어난 인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인정을 해버렸을 때 그리 유쾌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어떤 질문에도 답이 길지 않았던 김대명은 이 질문에 대해서는 툭툭 답을 이었다. 말이 끝날 때쯤엔 기자를 바라봤다. 그 눈에서는 확고함이 느껴졌다.
"원래 미래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지 않아요. 장기적으로 계획을 두지 않기 때문이죠. '10년 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와 같은 생각을 잘 안해요. 당장 눈 앞에 있는 것만 잘하자는 생각이에요. 지금은 <뷰티인사이드> 촬영 마무리를 잘하자인거죠."
앞서 한 매체에서는 김대명과 만난 이야기를 기사화했다. 그 기자는 김대명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 인터뷰에는 김대명이 "나는 기대를 안 가져. 작품 하나 들어갈 때마다 내 기대는 밑바닥에서 더 땅을 파고 내려가. 나는 거기에서 뭐든 시작해"라고 말했다고 쓰여있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이냐고 물어봤다.
"뭘 하든 기대를 안해요. 끝나면 원점인거고, 뭔가 될 거라는 기대를 하면 더 힘들거 아니에요. 그저 잘해야겠다는 마음 뿐이에요."
김대명을 인터뷰하는 건지 김동식을 인터뷰하는 건지 혼란이왔다. 김대명은 완전히 김동식이 된 기분이었다.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할 수 있냐, 못하냐'가 기준이에요. 다 잘할 수는 없잖아요. 깜량이 되지 않는데도 작품에 뛰어들수는 없다고 봐요. 냉정하게 내가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거죠.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못할 수도 있는데요. 저보고 액션영화 하라고 하면, 저는 못해요. 준비기간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겠죠."
김대명도 인간이다. 욕심도 이기심도 있다. 하지만 드러내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칼날이 되서 돌아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단다.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은 누구보다도 강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추운데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며 악수를 건네는 모습마저도 김대명은 김동식 같았다. 올해 <미생>은 20일 종영을 끝으로 마무리됐지만 김대명은 배우 인생은 이제부터 출발이다.
조금은 돌아서 온 출발선에서 한 발짝을 뗀 김대명. 그의 앞으로 배우의 삶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관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