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데뷔 9년차의 중고 신인 배우 유장영(32). 극단 생활을 통해 연기 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난해 방송된 TV조선 드라마 <최고의 결혼>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긴 무명 생활을 지나 이제 막 배우로서 꽃을 피워내고 있는 셈이다.
유장영은 <최고의 결혼>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씬 스틸러’란 타이틀을 얻었고,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어우동: 주인 없는 꽃>를 통해 생애 첫 영화 주연을 맡았다. <어우동: 주인 없는 꽃>은 아름다운 자태에 지성까지 겸비한 여인 어우동이 남편에게 배신 당한 후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의 역사적 스캔들을 다룬 작품. 유장영은 빼어난 미모의 어우동에게 한 눈에 반해 정사에 소홀해지는 성종 역을 맡았다.
<어우동: 주인 없는 꽃>의 개봉을 앞두고 유장영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유장영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소지품들을 가지고 와 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유장영은 정장 바지, 여권, 2G 휴대 전화, 영화 대본을 내밀었다. 유장영의 삶, 꿈,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배우 유장영. (사진제공=하이씨씨)
◇9년전 완도에서 상경.."첫 연극 무대 때 입은 바지 잊지 못해"
유장영의 고향은 전라도 완도다. 데뷔 전엔 이 곳에서 수산업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함께 일을 하며 지냈다. 유장영에겐 누나 둘, 여동생 하나가 있다. 집안의 대소사에 앞장 서며 아들 역할을 톡톡히 했던 유장영은 "평범하고 착한 아들이 꿈이자 삶의 목표였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2005년, 유장영의 인생이 바뀌었다. 당시 방영됐던 KBS 드라마 <해신>의 세트장이 완도에 생겼다. 유장영은 "당시 동경의 대상인 연예인들을 보게 됐고, 그 때부터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결국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무작정 상경해 약수동에 위치한 한 극단에 들어갔다. 유장영은 선배들 밑에서 청소와 빨래 등 허드렛일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고 했다.
"저도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선배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넘볼 수가 없었어요. 어떨 땐 무릎을 꿇고 배역을 달라고 사정하기도 했죠. 그런데 어느날 어떤 선배님이 다른 작품 스케줄 때문에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면서 제가 연기할 기회가 생겼어요."
<패밀리! 빼밀리?>란 제목의 작품. 유장영은 이 작품을 통해 태어나 처음으로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호스트바 종업원 역할을 연기한 유장영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소지품 중 하나로 꼽은 정장 바지를 입고 섰다.
"저한텐 너무나 눈물 겨운 바지예요. 그때는 정말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너무 긴장을 한 채 연기를 하니까 다리에 쥐도 났고요.그 이후로 6~7년이 지났는데 저는 아직도 이 바지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어요."
◇배우 유장영이 꼽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소지품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장 바지, 여권, 영화 '어우동: 주인 없는 꽃' 대본, 2G 휴대 전화. (사진제공=하이씨씨)
◇"2008년에 만든 여권 한 번도 안 쓴 이유? 꿈 이루는 것이 먼저"
배우로서 오랜 무명 생활을 견뎌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유장영은 지연이나 학연 없이 홀로 서울로 올라와 9년이란 시간을 견뎌냈다.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고집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터. 유장영이 내민 여권과 2G 휴대 전화에선 그의 그런 고집 있는 성격이 느껴졌다.
"2008년에 여권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사실 아직 비행기를 한 번도 안 타봤거든요. 여권을 한 번도 써보질 못한 거죠. 아집인지 고집인지 모르겠네요.(웃음)"
그동안 비행기를 타려면 탈 수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아직 비행기를 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단 제가 열심히 성장해서 꿈을 이룬 뒤에 유명 배우로서 해외 촬영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리고 어머니가 아직 해외 여행을 한 번도 못 가셨는데 배우로서 자리를 잡고 나서 어머니와 손잡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 여권을 한 번도 쓰지 못한 것을 보니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더 열심히 하다 보면 곧 여권을 쓸 수 있는 날이 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유장영은 휴대 전화 두 개를 갖고 다닌다. 하나는 스마트폰, 하나는 2G 휴대 전화다. 그는 이 2G 휴대 전화에 대해 "15년째 쓰고 있는 번호"라며 "앞으로 이 번호를 쓸 수 있을 때까지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제 소지품 중에 가장 오래된 친구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저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알고 있죠. 제 첫사랑부터 어린 시절 친구들, 가족들도 다 이 번호로 통화를 했죠. 제 친구와 추억들이 다 담겨 있기 때문에 떠나보내기 아까운 친구예요. 앞으로도 제 꿈을 함께 할 친구고요."
◇배우 유장영. (사진제공=하이씨씨)
◇"첫 주연 영화 대본 끌어안고 자..따뜻한 배우 되고 싶다"
유장영은 <어우동: 주인 없는 꽃>의 대본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애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이니 감회가 남다를 터. 그는 "이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끌어안고 잤다"고 말했다. 유장영은 이 대본의 표지에 영화의 연출을 맡은 이수성 감독의 사인을 받아놨다.
"촬영을 여름에 했는데 더운 날에 사극을 찍느라 배우들이 많이 고생을 했어요. 고생한 만큼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감사한 것들뿐인 것 같네요.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것도 그렇고, 왕 역할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왕 역할을 맡은 것도 그렇고요."
2015년, 유장영은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어우동: 주인 없는 꽃>이 개봉한 이후에도 활발한 연기 활동을 통해 대중들과 만날 예정이다.
그는 "따뜻한 배우가 되고 싶다"며 배우로서의 목표에 대해 밝혔다.
"제가 원빈이나 장동건 선배님들처럼 화려하고 멋진 외모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저만의 매력은 분명히 있다고 확신해요. 왠지 친근감이 느껴지고, 따뜻하고 훈훈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배우로 오래 남고 싶어요."
이어 "아직도 처음 섰던 연극 무대를 잊지 못한다"는 그는 "너무나 연극 무대가 좋기 때문에 연극 무대에서도 오래 남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광대 같은 배우, 그리고 씩씩한 아들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