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한 풍자 전문 주간지의 사무실에 테러가 가해졌다. 사람들이 죽었고, 프랑스는 뜨거워졌다. 테러의 주모자들이 무슬림들이었다는 사실은 피해자들에게(그들의 과거 행적과는 무관하게) '표현의 자유의 최전선에 있던 투사'의 이미지를 두텁게 덧씌웠고, 피의자들에게 향하는 감정적인 비난의 목소리가 더 빠르게 커지도록 했다.
이번 테러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죽었다'고 믿는 이들은 'Je Suis Charlie'라는 문장 아래에 모였다. '내가 샤를리다'라고 외치는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영정에 담고 ‘이럴 수는 없다’며 길거리로 나왔다.
사건이 벌어진 뒤로 며칠 간 많은 매체에서 가장 많이 보였던 단어, 혹은 문구는 '테러'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사망'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과 관련해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던 사진 중 하나는 비무장 상태로 엎드린 이에게 총구를 겨눈 테러범들의 사진이었다. 피해자들의 사망과 '표현의 자유가 사망했다'는 문구, 그리고 자극적인 사진들은 테러를 주도한 이들의 악마화를 가속화했다.
특히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망 선고는(어떤 이가 선고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이 사건 자체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이 양지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분위기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여론만 보아도 '내가 샤를리입니다'라고 하는 여론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과도하게 유용되었다고도 해도 무리가 없을 「샤를리 엡도」식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적은 언론에서도 사건이 벌어진 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제기되었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테러라는 의견 피력의 극단적 형태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고 따라서 테러의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보내야 함은 당연하다. 연민의 감정이 드는 것 또한 인간이라면 당연한 감정적 수순일 것이다. 테러범들의 행동에 대한 비난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부 자르듯, 희생자들을 자유의 최전선에 있던 이들로 기억하고 추모하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비난하기에는, 이번 사건의 근저에 깔려 있는 문제의 깊이와 넓이가 상당하다는 느낌이다. 개운치가 않다.
◇샤를리 엡도 홈페이지 캡쳐(자료=바람아시아)
상대방을 얼마나 포용할 수 있는가? 혹은 이미 배제당하는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 사회 내에 존재한다면, 이 집단 구성원과 그 이외의 구성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할 것인가?라는 질문들에 대한 「샤를리 엡도」의 답은, 표현의 자유라는 큰 벽 뒤에서 끊임없이 조롱을 보내는 것이었다.
유럽산(産)이외의 것에는 철저하게 저급, 특이의 딱지를 붙이는 특유의 유럽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조롱의 끝에 '유럽화'라는 목적이 있었다면, 「샤를리 엡도」의 조롱은 포용이라기보다 강요에 가깝다. 이 강요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테러로 대응한 것이다. 조롱에 대해 그들이 보인 반발의 폭력성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더욱 거센 비난의 중심에 데려다 놓았다.
무슬림들, 그리고 그들의 신에 대한 「샤를리 엡도」의 지속적인 조롱, 그리고 그에 대한 테러. 이것이 전부일까. 프랑스 내에서 생활하는 알제리계 무슬림들은 스스로를 '2등 시민'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생활수준이 낮은 편이다. 실업률은 높으며, 직업을 가졌다 해도 임금 수준은 낮은 편이다.
약 130년 간 드리워져 있었던 식민 지배의 그림자는 본토 뿐 아니라 프랑스로 넘어온, 또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민자들의 자손에까지 뻗어 있다. 프랑스의 이민정책은 이민자를 끌어 모았지만 그 이민자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샤를리 엡도」의 조롱은 이민자, 그 중에서도 무슬림 이민자들의 불만에 불을 붙인 격이다.
물리적인 면에서는 참혹한 일방폭행이 맞다. 비무장한 만평가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 무슬림들의 잔인성은 어떤 논리로도 변호하기 힘들다. 하지만 문화에 대한 포용, 프랑스 인구의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는 알제리계 무슬림 문제의 차원에서 보면, 지속적인 조롱과 그에 대한 테러는, 둘의 쌍방 폭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