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조만간 국채매입 프로그램을 단행할 것이란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독일은 이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ECB의 추가 부양으로 구조개혁 노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ECB, 국채매입 가시화..5500억~1조유로 전망
19일(현지시간) 범유럽 지수인 Stoxx 50지수는 전일보다 0.52% 상승한 3218.79를 기록했다. 독일 DAX30 지수는 이날 전거래일 대비 0.73% 오른 1만242.35로 역대 최고치에 도달했다.
오는 22일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미국식 양적완화인 국채매입을 도입할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면서 투자심리가 살아난 것이다.
지난 14일 유럽사법재판소(ECJ)가 ECB의 무제한국채매입(OMT)을 용인하는 판결을 내린 데다 각국 중앙은행이 ECB의 추가 부양을 염두에 둔 결정을 내려 곧 국채매입 결정이 내려질 것이란 전망이 확산된 상황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실제로 지난 15일 스위스 중앙은행은 3년 4개월간 지켜오던 유로당 1.20스위스프랑의 하한선을 폐기했고 덴마크 중앙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둘 다 ECB 추가 부양에 따른 유로화 약세로 자국 통화가치가 급등할 것을 예상해 선제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쯤 되자 경제 전문가들은 ECB의 국채매입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규모를 가늠하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먼저 블룸버그 서베이 이코노미스트들은 드라기가 5500억유로의 국채매입 프로그램을 단행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위스 UBS은행은 매입 규모가 그보다 많은 1조유로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ECB 정책위원들도 최근 ECB의 대차 대조표를 2조유로에서 3조유로로 키울 것이라고 공언하며 강력한 부양책이 동원될 것이란 기대감에 불을 지폈다.
매입 가능한 자산 중 그 액수가 1조유로에 이르는 것은 각국 국채밖에 없다.
가트사이드 JP모건 자산운용 고정금리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ECB가 추가 행동에 나서면 2013년 4월 일본이 양적완화를 단행했을 때와 비슷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유로화 가치가 절하되고 국채금리는 떨어지며 각국 증시는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ECB 국채매입 '회의적'..메르켈 "구조개혁 지연되면 안돼"
그러나 독일을 중심으로 한 회의론 또한 만만치 않았다. ECB 국채매입이 가시화되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증권거래소인 도이체뵈르제에서 "ECB의 다음 행보와 관련해 한가지 유념해야 할 점은 유로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ECB의 행보로 각국 구조개혁이 지연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탈리아나 프랑스를 보면 알겠지만, 유로존 부채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긴축 정책이 약화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메르켈이 국채매입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발언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추가 부양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하게 내비쳤다고 해석했다.
독일이 ECB의 추가 부양에 난색을 표하는 이유는 재정지출이 늘면서 각국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거나 물가상승률이 급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회원국 국채 금리가 이미 많이 낮아진 상황이라 굳이 국채를 사주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의 10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밖에도 효과성과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었다.
다리오 퍼킨즈 롬바드 스트리트 리서치 이코노미스트는 "양적완화는 이탈리아 같은 부채국 재정에 도움이 되겠지만, 낮은 성장률과 물가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르겐 스타크 전 ECB 집행이사는 "양적완화는 각국 정부의 정책의지를 꺾어 놓을 것"이라며 "유가 하락으로 물가가 낮아진 것이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위기가 찾아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