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아픈 게 아니다

오늘 부는 바람은

입력 : 2015-02-03 오전 10:25:00
Y의 연락은 오랜만이다. 늘 눈코 뜰 새 없는 Y는 신입사원이 되어서도 그렇겠지, 짐작하며 연락을 미루곤 했다. 예쁜 얼굴에, 에이 플러스 학점만 찍은 그는 세칭 ‘알파걸’로 불리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둘 다 영문과 학생이었지만 나는 니체와 맑스, 그는 프로이트와 융만 찾아 읽었다. 곁길 찾는 사람 잘 없으니 쉽게 친해졌다. 나는 복학생으로, 그는 신입사원으로 생활이 달라진 요즘은 만나기 어려웠다. 
  
◇사진=바람아시아
 
참 오랜만에 묻는 안부의 답은 반가움이 아니라 설움이었다. 샤워한데다 잠옷 차림이었지만 Y가 당장 한잔 하고싶다 길래, 옷 갈아입고 바로 나갔다. 금요일 밤이었다. 근데 처리할 회사일이 좀 남았으니, 제 집에서 조금만 기다리란다. 책상 위에 Y의 사원증이 있었다. 그 옆의 책들, 그의 독서 취향이 달라졌다.
   
Y가 아프다. 참 많이도 팔린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말한, ‘정신승리법1’으로 덜 수 있는 그런 아픔이 아니다. 픽 쓰러진 적이 두 번, 불안하고 답답해서 잠 못 이룬 적이 여러 번, Y의 몸과 마음이 다 아프다. 병원은 안 가고 뭐 했냐고 쏘아붙이려다 말았다. 이 시간까지 상사가 전화할까 긍긍하며 랩톱 붙잡고 있는 친구에게 할 말은 아니지 싶었다. 그를 앓게 하는 병은, 스스로 믿을 만한 의사와 편히 대화할 때 그 원인을 드러낸다고 한다. 주말까지 그를 부리는 회사가 평일에 그런 여유를 줄 리 없다.
 
Y만 아픈 게 아니다. 어제(2월 2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놓은 통계를 봤다. 2012년 3~5월까지 직장가입자가 아니었으나 6월에 새로 직장가입자로 된 25~35세 성인 7만 8241명 중 환자 수와, 그들이 쓰는 진료비가 많이 늘었다. 신뢰도 1위라는 어느 언론사가 그 통계를 풀어내길, “진료비는 10%가량 늘었고, 병원을 찾지 않은 신입사원 100명에 5명꼴로 입사 뒤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 치료를 받았다.”
 
한숨 쉬며 겨우 랩톱을 덮은 Y가 나가잰다. 여느 때처럼 왕십리 대폿집이려니 했는데, 그는 “이태원 가서 춤추고 싶다.” 소주 한 잔을 겨우 넘기던 그가 몇 배 더 독한 테킬라를 연거푸 꺾었다. 냅다 아래층 클럽으로 내려가더니 그 시끄러운 박자를 잘도 즐긴다. 술에 취해 비틀댄 건지도 모른다. 사표 썼다고 소리소리 지르는 걸 보니 제대로 취하긴 했다. 재미있는 건, 그런 Y에 환호하는 직장인들. 그 통계가 잡은, 아픈 신입사원들이 모인 걸까. 엥겔스가 당시 영국을 보며 쓴 문장을 옮김직하다. “서로 밀고 밀리며 지나쳐 가는 온갖 계급과 신분의 수만 명의 사람들, 이들은 똑같은 특성, 능력을 갖고 있으며 너나없이 행복해지는 것에 관심을 가진 똑같은 인간들이 아닐까?”
 
새벽 어스름에 땅 위로 올라왔다. 커피로 술기운 떨치는 버릇 여전해서, 마시면서 걷자 했다. 그가 걸으면서 말하길, “알다시피 나는 멍 때리기를 좋아하잖아, 그러면서 저렇게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길 즐겼잖아, 요즘 그걸 못하니 내 생각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같네.”
 
집에 바래다주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곧 일어나서 못다 한 공부를 더 하려 대학원을 알아볼 게다. 어찌어찌 콘택트렌즈만 빼놓게 하고, 보일러를 켜뒀다. 그러고 나오니 어느새 첫 지하철이 돌 시간이더라. 왕십리역에 벌써 나와 하루를 여는 사람이 많다. 좀 전의 땅 밑에서 Y에 환호하던 직장인들이 떠올랐다. 옮기다 만 엥겔스의 문장을 마저 쓴다. “그런데도 이들은 뭐 하나 공통된 것 없는 것처럼, 서로 뭐하나 관련도 없는 것처럼 각자의 길을 재촉하며 지나쳐 간다.”
 
서종민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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