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우기자]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상도초등학교 옆 산65-49번지는 지난해 8월 재개발 공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사는 아직 시작도 안 됐다.
3일 찾아간 상도4동 산65-49번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처럼 보였다. 이 곳에서 철거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6년부터였다. 상당부분 철거가 됐고 남아 있는 집들도 당장 무너질 것 같았다. 겨울 추위를 막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떠났지만 몇몇 주민들은 아직 남아 있었다.
상도4동 주민 강재경(가명)씨는 "집 주인들은 다 떠났지만 세입자들은 떠나도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여전히 살고 있다"며 "가스는 안 들어오지만 전기는 계속 들어오고 있어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작구는 2007년 이 곳을 주택재개발 정비 구역으로 지정했지만 2011년 해제했다. 토지소유사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공사에 관여할 수 없는 상태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민영개발 지역이기 때문에 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민영개발은 예정 시각을 많이 넘겼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다. 공사가 늦어지면서 주민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다. 불법 투기 쓰레기들이 쌓이는 등 우범지역 같은 모습이 되고 있다. 한주미(가명)씨는 "밤에 혼자 다닐 때는 겁이 난다"고 걱정했다.
◇상도4동 산65-49번지 전경. 재개발을 위해 2006년 강제 철거가 시작되고 주민들을 쫓아냈다. 재개발 공사는 2014년8월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아무 진척이 없다.(사진=뉴스토마토)
◇재개발 피해에도 재개발 원하는 주민들
재개발의 실패는 주민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동작구는 개발이 지연되면서 주민들 사이 갈등과 주민들이 느끼는 상실감이 심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상도4동은 1960년대 주거지로 개발된 곳이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바로 옆인 서초구, 강남구 등이 집중 개발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인 박탈감은 재개발에 대한 열의로 이어졌다.
산65-49번지 재개발이 지지부진하고, 부동산 시장 침체기로 다른 지역의 대형 재개발 사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상도4동 일부 주민들은 대규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동내 골목에는 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주민의견을 모으자는 벽보들이 붙어있다.
벽보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부동산 규제를 확 풀어줄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동네에 고품격 유명 브랜드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호소하고 있다. "재개발을 못하면 우리 동네는 이 모양 이 꼴로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나타냈다.
◇상도4동 골목 벽에 재개발 주민 동의를 호소하는 글이 적혀있다.(사진=뉴스토마토)
이런 요구를 단순한 부동산 투기 욕심으로 비난할 수도 있다. 다만 상도4동을 둘러보면 개발을 바라는 주민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상도초등학교 서쪽 언덕에는 오래된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주택들이 자연스럽게 생기다 보니 좁은 골목길 양 옆으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좁은 공간에서 출입구 등을 만들려고 하다보니 퍼즐 조각처럼 맞물린 주택들도 있다.
최근에는 낡은 주택을 허물고 도시형 생활주택들도 들어서고 있다. 새 건물이 들어서면서 외형은 깨끗해지고 없던 주차공간이 생기는 긍정적인 효과는 있다. 하지만 주변 주택에 사는 주민들의 조망권, 일조권은 더 악화됐다.
상도4동 경희병원 뒷편에는 작은 골목시장과 주택가가 붙어있다. 큰 길과 인접한 구역이지만, 이 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은 차 한대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주차장이 없는 주민들이 그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있었다. 화재나 위급한 환자가 발생할 경우 대처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이처럼 낙후된 상도4동은 지난해 12월 서울시 도시재생사업 지역으로 선정됐다. 동작구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재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상처와 요구를 보듬어야 한다.
◇상도4동 경희병원 주변 주택가. 주택들이 좁은 골목길에 밀집해 있다. 길에는 차들도 주차돼 있다. 화재, 응급환자 등이 발생했을 때 긴급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사진=뉴스토마토)
◇주거환경 개선에 적극적인 주민들
그러나 동작구는 난감한 상황이다. 도시재생사업을 재개발 사업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기대하는 주민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낙후된 환경에서 대형 개발을 바라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에 4년 동안 100억원이 투자되는 큰 사업이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 수준으로 환경을 바꾸기에는 부족하다. 다만 동작구는 이런 격차를 주민들의 활발한 공동체 참여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세권 상도4동 통장은 "상도4동은 낙후지역이지만 주민들 사이에 이야기가 오가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2월까지 28개 커뮤니티 단체가 활동하는 등 공동체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다.
동작구는 상도4동을 '함께 사는 골목동네'로 조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안전한 골목 재생 ▲든든한 노후생활 재생 ▲마을공동체 활성화 ▲쾌적한 생활환경 재생 ▲지역경제와 문화 재생이라는 5대 사업계획을 세웠다.
동작구는 공동체를 더 활성화하는 정책을 만들 계획이다. 예를 들면 마을리더를 육성하고 마을재생아카데미, 노인 동아리, 부모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도시재생사업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협력으로 해결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긴급 차량이 들어오기 어려운 곳에서 응급 환자 등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주민들이 직접 도와주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차들이 들어오기 쉽도록 담장허물기 운동도 추진하고 있다. 담장허물기 운동은 주민들에게 자발적으로 담장을 없애도록 유도하는 사업이다. 담장이 사라지면 도로는 넓어지고 주차공간은 더 많아진다.
김정근 상도4동장은 "주차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상도4동은 일찍부터 담장허물기 운동을 하고 있다"며 "많은 주민들이 참여해 도로 환경이 개선된 구역들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육·노인 시설 등 확충 요구 많아
동작구는 상도4동의 영유아, 어린이 비율이 서울시 평균보다 높은 것을 잠재력으로 꼽았다. 이런 장점을 살리기 위해 골목길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조성하고, 어머니들이 함께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방침이다.
상도4동 주민들도 육아·보육 혜택이 늘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윤 통장은 "지역에 어린이집은 20여곳이 있는데 국립은 3곳 뿐이다. 지역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국립 어린이집을 늘려달라는 건의가 많다"고 말했다. 노인 인구도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에, 지역 노인들을 위한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 건의도 많았다.
상도4동에는 양녕대군묘 등 역사 유적지와 도화공원, 상도근린공원 등 문화제, 녹지를 가지고 있다. 동작구는 이를 이용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주민들도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김 동장은 "양녕대군묘와 도화공원, 상도근린공원을 도는 관광길을 만들어보자는 의견도 있었다"며 "하지만 양녕대군묘는 동대문 방화 사건 이후 출입이 통제됐다. 주민들의 편의와 외부 방문객들을 위해 양녕대군묘를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고 정책 개선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