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한국전력 부지ⓒNews1
[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한국전력 부지 고가 매입에 따른 진통이 주주총회에까지 이어질 태세다.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재선임에 제동을 예고하면서다. 현대차그룹이 한전 부지 인수를 결정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는
현대모비스(012330)와
기아차(000270)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재선임안에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전 부지 매입 당시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에 대한 견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기아차는 김원준 사외이사의 재선임을, 현대모비스는 이우일 사외이사의 재선임을 안건으로 올린 상태다.
다만,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과 윤갑한
현대차(005380) 사장 등 사내이사들의 재선임에 대해서는 중립 의견을 제시하기로 했다. 기업 가치가 얼마나 훼손됐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데다, 경영 안정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게 국민연금의 설명이다.
앞서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구성된 현대차그룹 컨소시엄은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로 불리는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를 시장가격을 훨씬 상회하는 초고가에 매입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해 9월 현대차그룹 컨소시엄은 한전 부지를 감정가의 3배인 10조5500억원에 낙찰받았다. 공시지가의 7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며, 지난해 현대차 연구개발비의 5.7배 수준이다. 이로 인해 현대차그룹이 본업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적은 통합사옥 부지 마련에 무리하게 자금을 썼다는 비판이 일었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연일 매도세에 나서는 등 시장은 등을 돌렸다.
국민연금도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의 한전 부지 고가 매입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봤고, 이는 정당한 주주권리 행사 결정으로 이어졌다. 국민연금은 현대차그룹의 큰손이다.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현대모비스와 기아차의 지분을 각각 8.02%, 7.04% 보유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6.96%,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기아차 지분 1.74%보다 많다.
한전 부지 낙찰 전 21만원대였던 현대차 주가는 한때 15만원대까지 꼬꾸라졌다. 3년7개월 만에 시총 2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넘겨주는 굴욕도 맛봤다. 현대차가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정책을 펼치며 진화에 나섰지만 한 번 싸늘해진 시장의 시선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민연금이 이번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의결권을 강화하고 있는 최근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만도가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와 사업회사인 만도로 분리하는 안건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같은 해 10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합병이 추진됐을 때에도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서 무산시켰다.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선도 불편해졌다. 과거 단순 투자에만 그쳤던 역할에서 주총장에서 안건을 무산시킬 정도의 입김을 내면서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긍정적 시선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주총에서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라며 "소액주주들로서는 한계가 있는 사안에 대해 국민연금이 자발적으로 견제역할을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