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한다. 핵심 경쟁력 강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본질은 지배구조 강화다. 삼성그룹에서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해 온 제일모직이 그룹의 원조 격인 삼성물산을 흡수 합병하면서 지배구조 재편작업도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26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합병을 결의했다. 제일모직이 1대 0.35의 비율로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방식이다. 양사는 오는 7월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9월1일자로 합병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합병회사의 사명은 삼성물산을 사용하기로 했다. 삼성그룹의 창업정신을 계승하고, 삼성 브랜드 인지도를 고려한 판단이다. 이로써 제일모직은 5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번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한층 높일 수 있게 됐다. 삼성물산 합병법인을 통해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23.2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다. 이번 합병으로 통합회사 지분은 16.5%로 줄어들지만 최대주주 지위는 유지한다. 합병 후 총수 일가 지분은 ▲ 이건희 회장 2.9% ▲이재용 부회장 16.5% ▲이부진 사장 5.5% ▲이서현 사장 5.5% 등 총 30.4%에 달한다. 삼성물산은 삼성SDS 17.1%, 삼성전자 4.1% 등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합병회사의 경쟁력 확대도 기대된다.
회사 측은 핵심사업인 건설·상사·패션·리조트·식음료 등에 있어서 글로벌 경쟁력과 시너지가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두 회사가 각각 운영해 온 건설 부문을 통합할 수 있고 상사 부문의 글로벌 운영 경험과 인프라를 활용해 패션·식음료 사업의 해외진출도 가속화할 수 있게 됐다. 매출은 지난해 34조원에서 2020년 60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삼성의 신수종 사업인 바이오사업에 최대주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6.3%와 4.9%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은 "양사의 합병 가능성은 계속 언급돼 왔다"며 "삼성이 판단하기에 지금 삼성물산의 주가가 낮고 제일모직은 높기 때문에 양사의 합병 비율이 가장 유리한 때로 생각해서 추진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임애신 기자 vamo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