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 도입을 두고 법조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상고법원은 상고 사건 가운데 법령 해석이 새로 필요하거나 사회적 영향이 큰 주요 사건만 대법원이 맡고, 나머지 일반 사건을 담당하는 별도의 법원이다. 상고심 사건 폭증으로 대법관의 재판업무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대법원이 내놓은 대안이다. 대법원이 지난해 처리한 사건은 무려 3만8141건으로 대법관 1명이 한 해 3000여건을 처리한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상고심 개선책 마련의 필요성에는 대부분 동감하지만 '상고법원 도입'을 두고는 대한변호사협회를 중심으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재판권 침해라는 반대여론이 거세다. 국민의 권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상고법원 도입의 장단점과 찬반 주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상고법원 설립을 추진하는 대법원의 주된 논리는 상고심 과부하 문제를 해결할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상고법원과 업무를 분담해 전체 상고심 중 0.06%에 불과한 전원합의체 판결 비율을 높이고, 통일된 법령해석과 법적 기준을 제시하며,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법리를 발견해 법의 발전을 선도하는 최고심급 법원의 기능을 하겠다는 게 대법원의 상고법원 도입 목표다.
"대법관 수 많으면 전원합의체 어려워"
상고법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제도는 예전에도 있었다. 중요사건만 상고를 허가하는 '상고허가제'는 1981년 도입됐다가 국민의 재판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에 따라 1990년 폐지됐다. 이보다 앞서 1961년에 생겼던 '고등법원 상고부'도 법해석 통일 면에서 문제 있다는 비판을 받고 2년만인 1963년에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상고법원 반대파가 주장하는 것은 '대법관 증원'이다. 그러나 상고법원 도입 찬성측은 대법관의 수가 너무 많으면 전원합의체(대법원장을 포함한 14명의 대법관이 모두 심리에 참여하는 것)에서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하기 어렵다고 반박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상고법원을 신설해 법해석 통일과 권리구제 기능을 대법원과 상고법원이 각각 나누어 담당하면 모든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다"며 "대법관이 늘어나면서 재판부가 많이 생기면 재판부마다 서로 다른 판결을 내려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도권의 한 법원장은 "장관급인 대법관을 더 뽑는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며 "대법관 증원 쪽으로 가는 것은 상고심 문제 해결에서 오히려 더 멀어지는 길"이라고 말했다.
전국 변호사의 70%가 소속된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가 전격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힌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서울변호사회는 지난달 18일 "상고법원 설치가 완벽한 방안은 아니지만 상고심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인 방안으로 6월 임시국회에 통과해야한다"고 법원에 힘을 실어줬다.
특히 상고법원 안에는 대법원 사건의 민사소송에서도 형사소송처럼 당사자가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하는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변호사 강제주의)와 국선대리인제'가 포함돼있다. 이는 불황을 겪고 있는 변호사 업계를 활성화 시킬 수 있어 업계에서 장점으로 꼽힌다. 서울변호사회도 이에 대해 "법률전문가인 변호사가 법률적 쟁점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변론하도록 해 실질적으로 법률심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법관 증원은 비헌법적 주장"
학계에서도 상고법원 찬성 주장이 나온다. 이인호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27일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와 대한변호사협회 주최 토론회에서 "헌법상 대법원이 모든 상고심을 관할해야하는 것은 아니다"며 "대법관을 30~40명으로 늘리고 12개의 재판부를 두자는 주장은 1개 재판부 구성을 기본으로 상정하고 예외적으로 부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에 대치되는 비헌법적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흔히 3심 재판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더 보장한다고 인식하지만 심급이 많을수록 경제적 여력이 없는 당사자에게 불리해진다"며 "1, 2심을 획기적으로 강화해 당사자가 신뢰할 수 있게 한다면 전면적인 상고허가제가 시행돼도 무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사진)을 필두로 법원행정처 간부들과 법원 관계자들은 상고법원 설립을 위해 국회의원 접촉부터 대외 홍보까지 그야말로 '진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 5월 중순부터는 전국 법원 건물과 지하철 역 곳곳에는 상고법원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나붙었다. '바를 정(正)'자 안의 '상(上)'자 이미지를 부각시켜 상고법원이 '바른 사법서비스'라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이 '정부 입법' 대신 '의원 입법'을 택한 것도 신속한 처리를 위한 전략 중 하나로 분석된다.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상고법원 도입을 건의한지 6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여야 의원 168명의 서명을 받아 법원조직법, 민·형사소송법 개정안 등을 대표발의 했다. 대법원은 6월 중 법안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상 4심제…기형적 형태"
법조삼륜의 두 축인 법무부·검찰과 변호사 단체는 상고법원 설립은 '기형적인 형태'라며 대법관 증원이 더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에서 "상고법원 안은 판례위반이라는 포괄적인 요건으로 특별상고를 허용하기 때문에 이를 남용할 경우 사실상 4심제로 운영될 우려가 크며, 상고법원 사건 분류와 특별상고 요건 심사도 새로운 업무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또 "산술적으로 대법관 3명 증원만으로도 20%의 사건 부담이 경감되고 1·2심 충실화가 정착돼 상고율이 줄면 대법관 소수 증원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1월 당선된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 회장(사진)은 이미 선거 당시부터 상고법원 도입 반대를 주장하며 대안 공약으로 '대법관 증원'을 내걸었다. 변협 '상고심제도 TF'의 장주영 변호사는 "의원 입법을 통한 법률개정 시도와 의원 설득작업, 대법원 공보관의 사법시험 존치논의 가능 의견, 서울변회의 찬성 발표 등을 보면 상고법원 설치가 입법로비를 방불할 만큼 조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추진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했는지, 수렴했다면 그 의견이 무엇인지 밝힌 적이 없다"며 "법원에 대한 국민 신뢰가 낮은 상황에서 대법원 업무 줄이기에만 초점을 맞춘 상고법원 설치보다는 대법관을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장이 인사권…독립성 침해 우려"
학계에서도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채증법칙 위반을 구실로 사실심에 관여해 판결을 뒤집으면서 국민들에게 대법원에 가면 유죄가 무죄로 바뀔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며 "상고심 사건 수를 폭증시킨 것은 대법원 자신"이라고 비판했다. 또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의 인사권도 완벽하게 틀어쥐게 돼 판사의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부산·울산·경남지방변호사회도 서울변호사회의 찬성 입장 표명 직후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대법관 위상을 유지하고 고위법관 자리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지 몰라도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는 담을 쌓는 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변협은 오는 6일 열리는 전국지방변호사회장 협의회의 의견을 모아 상고법원에 대한 공식 입장을 재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연합 등도 비슷한 이유로 상고법원 설립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판사 출신인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22일 대법관을 18명으로 늘리고 그 중 3분의 1을 고위 법관이나 검찰 출신이 아닌 법률가로 임명하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서 의원은 "상고법원 법관을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것은 위헌이며, 상고법원 판결에 특별상고를 허용해 결국 4심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서울 설치' 두고도 대립
상고법원을 '서울에만' 설치한다는 기본 방향도 일각에서는 문제점으로 꼽고있다. 서울 중심의 현 체제에서 벗어나 세종시 등에 상고법원을 두거나 전국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설치하자는 주장이다. 9개 지방분권운동단체가 연대한 지방분권국민운동은 지난달 "대법관 증원이 어렵다면 사법의 지방분권 실현과 지역민에 대한 사법서비스 향상을 위해 고등법원 상고부를 도입하는 것이 순리이며 서울에만 상고법원을 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대법원은 그러나 법령 해석·적용의 동일성을 위해 상고법원을 대법원이 있는 곳에 설치한다는 방침으로, 구체적으로는 대법원 바로 옆에 있는 법원도서관 건물에 두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상고법원 설치는 국민의 소송비용을 증대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상고법원 안의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에 대해 법무사협회 관계자는 "국민 세금으로 변호사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라며 "변호사가 없다고 소송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초법적이며 앞으로 항소심과 1심으로 확대 시행해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