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는 국내 리딩뱅크(선도은행) 자리를 놓고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한 신한의 수성과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KB의 공성전은 수년째 진행형이다.
자칭타칭 '관리의 신한'·'1000만 고객의 KB'으로 불리며 전혀 다른 색깔을 가졌지만 리딩뱅크라는 같은 목표를 향하는 경쟁자인 만큼 닮은 점도 많다.
두 곳 모두 수뇌부의 내분사태를 겪으며 벼랑 끝 위기의 순간을 넘겼으며 갈수록 침체되고 있는 은행 산업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금융위기 발판 삼아 성장한 '관리의 신한'
신한금융지주는 신한은행을 모태로 2001년 지주사를 출범했다. '신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온 역사는 길지 않지만 조흥은행을 통합하면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금융사로 재탄생했다.
신한지주를 대표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재일교포'다. 지난 1982년 재일교포 19명이 100% 지분을 가지고 신한은행을 세웠다. 이후 여러차례 통합을 거치며 이들의 지분율은 많이 희석됐으나 신한지주의 지분을 20% 가까이 보유한 최대주주 그룹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신한이 다른 금융지주사에 비해 외풍에 강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신한지주가 리딩뱅크로 도약한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두 차례의 금융위기였다. 외환위기 여파로 무너진 조흥은행을 2006년 인수하면서 신한은 '4대 금융'에 이름을 올렸고, 2007년에는 LG카드를 품으면서 비은행부문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잇딴 거물급 인수합병(M&A)으로 신한은 2008년 업계 1위로 도약했다.
우리금융이 민영화를 위해 해산하면서 신한지주가 1위로 올라선 효과도 있었지만 지난해 한해동안 자산이 26조7000억원 증가하며 4대 금융지주 중 가장 큰 성장을 이뤘다. 1분기말 기준 연결총자산은 347조4000억원으로 한 분기동안 9조4000억원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신한지주의 연결총자산은 338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당기순익은 2조811억원으로 은행권 지주사 가운데 홀로 2조원을 넘겼다.
1위 자리를 굳혀가는 듯 보였던 신한지주는 올해 1분기 6년만에 KB금융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주력 계열사인 신한은행이 저금리와 경남기업 법정관리 여파에 허덕이면서 신한지주의 1분기 순익이 전년동기대비 6% 늘어난 5921억원에 그쳤다.
'관리의 신한은행'은 휘청였지만 덕분에 다른 계열사의 성장이 돋보였다. 지난해 비은행계열사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6259억원으로 전체의 30%를 넘어섰다. 비은행계열사 중에서는 신한카드가 가장 많은 순익을 냈고 이어 신한금융투자와 신한생명 등이 뒤를 이었다.
계열사간 고른 성장을 뒷받침 하는 것은 업권별 칸막이를 없애고 협업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신한지주는 지난 2011년 말 업계 최초로 은행·증권간 복합점포인 개인자산관리(PMW)센터를 열었고, 지난달 은행과 증권사 임원에 대한 겸직제를 최초로 도입하면서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노리고 있다. 미래 중점 먹거리로 삼은 글로벌시장 및 은퇴시장 역시 협업을 통해 공략할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최근 국제 신용등급이 상향조정되면서 리딩뱅크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무디스는 지난달 26일 신한은행의 장기 은행예금등급 및 선순위무담보 채권등급을 'A1'에서 'Aa3'로 한단계 상향조정했다. 이번에 조정된 등급은 국책은행을 제외한 국내 시중은행 중 가장 높은 등급이다.
◇'M&A 흑역사' 딛고 1위 노리는 'KB금융'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지난해 경영진의 내분으로 홍역을 겪었던 KB금융이 올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분기 KB금융이 6년만에 업계 1위 자리를 탈환하면서 리딩뱅크로 재탄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B금융은 2008년 지주체제를 갖췄다. 지주사의 중심은 역시 KB국민은행이다. KB국민은행의 원형인 국민은행은 지난 1963년 문을 열었다. 이후 금융위기를 겪으며 지난 2001년 주택은행과 합병해 현재의 국민은행이 탄생했다.
합병으로 출범한 국민은행은 자산규모로 보나 영업망으로 보나 독보적인 1위 은행이었다. 2001년 국민은행의 총자산은 약 156조원으로 당시 신한(55조원)·우리(75조원)은행 등 경쟁사를 두배 이상 앞질렀다.
하지만 지난해 KB금융은 자산기준으로 신한금융과 농협금융, 하나금융에 이어 4위로 뒤쳐졌다. 연결총자산은 308조4000억원, 당기순익은 1조1451억원을 기록했다. 과거의 영광이 무색한 성적표였다.
그러나 올해 1분기 상황이 달라졌다. 연결기준 1분기 순익은 6050억원으로 6년만에 신한지주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과거 국민카드 분사 당시 잘못 납부한 법인세를 환급받으며 발생한 기타수익이 한 몫 했다.
아울러 KB금융지주의 기둥인 국민은행의 순익도 크게 뛰었다. 1분기 국민은행의 순익은 4762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95.2%, 전분기대비 222.0%나 급증했다. 그룹 전체 순익에서 KB국민은행이 차지하는 비중도 일년만에 65%에서 77%로 뛰었다.
KB금융지주는 은행 실적에 대한 의존도가 비교적 높은 편인데 그 이면에는 인수합병(M&A) 잔혹사가 숨어있다. 비은행계열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 대형 M&A를 여러차례 추진했으나 번번히 고배를 마셔야했다. 2008년엔 외환은행 인수 포기, 2012년에는 ING생명 인수 무산을 겪었다. 지난해 추진하던 우리투자증권 인수도 농협금융에 빼았겼다.
지난해에는 드디어 LIG손해보험과 우리파이낸셜을 품는데 성공하며 M&A 흑역사라는 오명도 어느정도 씻었다. 현재 KB금융은 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LIG 미국지점 영업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다만 인수유효기간인 이달말까지 승인을 받지 못하면 금융위원회에 자회사 편입 승인을 다시 신청해야 한다.
LIG손보 인수가 마무리될 경우 KB금융의 계열사 수는 기존 11개에서 12개로 늘어난다. 직원수도 2만5000명에서 2만8500명으로 많아지게 된다. 1분기 기준 LIG손보의 자산규모가 24조~25조원 규모였던 점을 감안하면 인수 후 신한금융과의 리딩뱅크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