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SK서린 사옥. 사진/뉴시스
SK이노베이션이 알짜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무엇보다 재무건전성 확보가 급선무라는 위기의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231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37년만에 적자로 돌아서면서 재무상황에 빨간불이 켜졌다. 2011년 4조원대였던 순차입금이 지난 3월 말 기준 6조8223억원으로 약 70%나 치솟았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순차입금 규모를 6조원 이하로 줄인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경영환경은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정유업계가 직면한 경영환경은 갈수록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 셰일혁명으로 촉발된 원유 시장의 공급과잉과 중국·유럽의 경기 침체로 인한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 부진 등이 '구조적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때문에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은 향후 신사업 발굴과 신규설비 투자에 나설 경우를 대비, 차입금 부담을 덜기 위한 사전 조치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윤활유 사업이 '효자' 그 이상의 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도 고려됐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각 정유사의 윤활유 사업은 지난 2012년까지만 해도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대에 불과하지만, 영업업이익의 50%를 담당하며 확실한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하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 2013년부터 경쟁 심화에 따른 공급과잉과 수요 감소 등의 여파로 정체기에 접어든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SK이노베이션이 윤활기유 사업 대신 북미 기반 자원개발(E&P) 사업을 강화하며 수익성 확보에 집중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정일 신영증권 연구원은 " 고급윤활유는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신증설을 위한 원료조달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윤활기유를 키우기에는 현실적 장애물이 많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위한 포석으로 SK루브리컨츠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는 매각이 성사될 경우 차입금 상환에 1조원 가량 투입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MBK는 SK이노베이션 측에 2조5000억~3조원 안팎의 매각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절반 정도는 채무상환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미국 석유개발사업에 투자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서 정철길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석유 개발 부문의 경우 최소한의 자산관리 인력만 서울에 남기고 사업 본부를 미국 휴스턴으로 옮길 것"이라며 "지난해 인수한 오클라호마, 텍사스 소재 셰일 광구를 인근 지역으로 확장하고, 이들 광구를 북미 기반 자원 개발 전문회사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외 비핵심자산을 매각하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핵심사업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타이요오일 지분(92억원)과 포항물류센터(100억원 안팎)를 처분했으며 현재 SK인천석유화학의 유휴부지 매각도 추진 중이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