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임수정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의 내가 제일 좋아"

입력 : 2015-06-19 오후 1:32:16
◇영화 '은밀한 유혹'에 출연한 배우 임수정.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임수정의 충무로 데뷔작은 지난 2003년 개봉한 '장화, 홍련'이었다. 새로운 신데렐라의 탄생이었다. 임수정은 이 영화로 제4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제2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제2회 대한민국영화대상, 제24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여우상을 휩쓸었다. 이후 '미안하다, 사랑한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전우치' 등을 통해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성장한 그는 지난 2012년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제3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됐다. 이를 통해 톱배우의 위치에 올라선 임수정이 새롭게 선택한 영화는 지난 4일 개봉한 '은밀한 유혹'이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뒤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던 지연(임수정)이 인생을 바꿀 만한 위험한 제안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오랜만의 작품이 설레고 떨린다"는 임수정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은밀한 유혹'은 멜로로 시작해 범죄 스릴러로 변한다. 복합적인 장르의 작품인데다가 극 중 인물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현해내야 하는 영화다. 배우 입장에서 쉽지 않은 작품이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출연을 결정하게 됐나.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그렇게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끝까지 읽혀지는 시나리오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시나리오를 읽은 뒤 "재밌다, 하고싶다"고 생각했다.
 
-지난 2012년 개봉한 '내 아내의 유혹'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오랜만에 보니 어떻던가.
 
▲재밌었다. 촬영은 지난해 6월에 끝냈는데 제작 기간이 길어져서 이번에 개봉했다. 1년 만에 내 모습을 보니 저때 내가 저랬구나 생각도 들더라.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출연한 작품을 볼 때마다 잘한 점과 못한 점들이 보인다.
 
-이번 영화에서 후배 배우 유연석과 호흡을 맞췄다. 유연석과의 연기는 어땠나.
 
▲처음에 유연석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좋았다. 캐릭터에 잘 맞을 것 같았다. 같이 연기해보니 여러가지 면이 있는 사람이더라. 매너가 있고, 순간적인 집중력도 뛰어나고, 착했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면도 있었다.
 
◇배우 임수정.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은밀한 유혹'을 촬영할 때 연기 측면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감독님이 원하는 기준이 있었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거나 폭발시키지 않길 바랐다. 한 장면에서 보여줘야 하는 감정이 두 개 이상이었고, 숨겨져 있는 감정도 있다 보니 연기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려운 캐릭터를 마무리하고 나니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유혹적이었지만, 동시에 어려운 작품이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배우로서 바뀐 점이 있나.
 
▲누군가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통해서 내 나이를 찾았다고 하더라. 그 이후로 제안 받는 작품이 더 다양해졌다. 착한 여자, 이기적인 여자, 자기 삶에 집중하는 여자 등 다양한 역할이 들어온다. 내가 연기할 수 있는 역할이 다양해진 것이 반갑고, 작품 욕심이 더 난다. 하고 싶은 캐릭터가 너무 많다. 내 중학교 동창이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 엄마 역할도 내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다.
 
◇배우 임수정.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20대 때와 30대 중반이 된 지금을 비교한다면.
 
▲20대 때는 연기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 좋은 배우로 인정 받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래서 스스로를 많이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다른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연기할 때는 엄청 힘들다. 하지만 촬영 현장에 있을 때 내가 가장 빛나고 행복하다는 걸 많이 느낀다. 좀 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촬영을 마친 뒤 캐릭터에서 빠져나와 일상에 집중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됐다.
 
-여배우로 살아가며 힘든 점은 뭔가.
 
▲여배우일 때는 항상 화려한 곳에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벗어나면 나도 똑같은 30대 감성을 가진 그냥 여자다. 똑같이 밥먹고, 자고, 쉰다. 예전엔 여배우로서 화려하게 보여지는 게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은 내 모습 같지가 않았다. 이제 그 차이를 점점 좁혀가는 것 같다. 지금은 배우라서 좋고, 더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촬영 현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연기를 하는 편인가.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려고 한다. 현장에서는 항상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준비를 해도 상황이 어긋나버리면 소용이 없다. 현장에서 내가 부딪히게 되는 것들을 온전히 스펀지처럼 흡수하자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영화에선 어느 때보다 가슴을 열고 연기에 임했다.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의 영화였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슬프고 외로운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웃지 못하겠더라. 감정이 흐트러지면 안 되지 않나. 여배우로서 현장에서 방긋 웃거나 애교를 부리지 못해서 미안했다. 시사회가 끝나고 나서 스태프들과 술 한잔 하면서 "내가 너무 사랑했는데 표현을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다시 만나자면서 꼭 껴안기도 했다.
 
◇배우 임수정.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올해로 데뷔 15년차다. 이제 영화 현장에 후배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어쩔 수 없더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나도 신인 때 까마득한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왔다. 옛날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지금의 상황에 내가 자연스럽게 적응해야할 것 같다. 나도 내가 보며 자랐던 좋은 선배님들 못지 않게 본받을 만한 선배가 되고 싶다.
 
-여전히 동안이다. 비결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좋다. 감사하고. 우리 부모님이 연세에 비해선 체격도 작고 어린 이미지가 있다. 태어날 때 이렇게 태어났다.(웃음) 그런 것들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30대 배우로서의 고민은 없나.
 
▲나는 나이가 들면서 배우로서 기회가 확장되는 것 같아서 좋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30대가 되고 싶었다. 30대 여성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의 내가 제일 좋다. 내가 배우라는 것도 너무 좋다. 내가 다른 배우들보다 그렇게 화려한 활동을 해온 것은 아니지만, 나답게 잘 경력을 쌓아온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의 40대와 50대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 물리적인 아름다움은 없어질 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배우도 하고 싶지만, 나중에는 다른 일도 하고 싶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글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금도 글쓰는 연습을 자주 하고 있다. 언젠가는 결과물들을 모아서 보여드리고 싶다.
 
정해욱 기자 amorr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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