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능선을 넘은 그리스 사태를 두고 아직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3차 구제금융 협상 타결로 단기적인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는 소멸됐지만 여전히 리스크온 요인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리스크 등 돌발변수들이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우선 오는 15일(현재시간)까지 그리스 의회에서 개혁안에 대한 입법화가 모두 마무리돼야 하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스는 부가가치세 간소화와 연금 개혁, 민영화 등 고강도 개혁법안에 대해 의회 승인 절차를 마쳐야만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를 통해 3년간 86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이후 그리스에 대한 강경입장을 고수 중인 독일을 비롯한 핀란드 등 많은 국가들의 의회 승인도 받아야 한다.
때문에 그리스와 각국의 의회 승인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존하는데다 강도 높은 개혁조치 시행에 들어갈 경우, 경기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협상안이 타결됐다고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며 "어쩌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 내부 정치적 불안 잠재울 수 있나
주말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것은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연금삭감 등 그동안 채권단과 대립했던 거의 모든 쟁점에서 채권단의 요구를 수락했기에 가능했다.
협상 불발로 유럽중앙은행(ECB)의 지원이 중단될 경우 당장 은행 등 금융시스템 붕괴를 초래할 수 밖에 없는 다급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관전 포인트는 그리스의 내부 정치적 혼란의 진정 여부다. 지난 주말 개혁안 제출 이후 현 집권당인 시리자 내 핵심의원 17명이 이미 치프라스 총리에게 등을 돌린 상태다.
때문에 이번 정상회의에서 통과된 국유재산 민영화 방안 등 주요 개혁안이 그리스 의회에서 통과될 지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야당의 지지를 등에 업고 개혁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향후 내부 분열을 수습하기 위해 치프라스가 어떤 안을 들고 나올지 역시 주목된다.
시리자 내 핵심 인물들이 개혁안에 반발하면서 지지 기반이 약해진 치프라스 총리가 거국내각을 구성하거나 조기총선을 시행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개혁안을 원만히 실행하기 위해 치프라스 총리는 거국 내각 구성을 저울질 하고 있을 것"이라며 "조기 총선 외에는 뚜렷한 답이 없다"고 지적했다.
◇채무탕감 없이 재정문제 근본적 해결 '불가'
3차 구제금융은 향후 3년간 제공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그리스의 재정과 경제상태 악화로 그 전에 추가지원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랜 숙제였던 중장기 채무협상 논의도 계속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상 20년 만기연장과 30% 채무탕감 없이는 그리스 국가채무 불이행 문제는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즉, 채무탕감 없이는 그리스 사태의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때문에 3차 구제금융 협상이 끝나는 대로 중장기 그리스 국가채무 처리 방식에 관한 논의에 재차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에대해 독일이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이 문제를 두고 상당한 진통이 따를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원칙적으로 채무탕감(헤어컷)은 고려대상이 아니다"라며 "부채 경감 방안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와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유로존 내부 분열 심각
이번 협상 타결 과정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두고 각 국이 날선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유로체제의 불안정성을 확인시켰다.
협상 막판에는 과거 재정위기 때처럼 그리스에 엄격한 독일과 핀란드, 벨기에 등과 비교적 유화적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으로 양분되며 유로존 내 균열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특히 독일은 유출된 재무부 문건에서 그리스를 5년간 유로존에서 일시 탈퇴시키는 방안을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초강경 스탠스를 보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비현실적으로 긴축만을 강요하고 있다며 독일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때문에 반(反)긴축 바람이 확산될지 여부 또한 우려되는 대목 중 하나다.
오는 10월 예정된 포르투갈과 12월 스페인 총선에서 반긴축을 주장하는 좌파정권이 정권을 잡을 경우, 유로존 내 결속력 약화 리스크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가운데),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12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수경 기자 add171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