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류승룡은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로 통한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카사노바 역을 맡아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를 선보이더니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묵직한 성격의 허균 역을 연기했다. 또 <7번방의 선물>에서는 6세 지능의 용구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연기 변신에 나섰다. 지난 9일 개봉한 <손님>을 통해서다. 악사 우룡(류승룡)이 아들과 함께 서울로 가던 길에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골 마을에 우연히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손님>에 출연한 배우 류승룡.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류승룡은 "신선하고 독특한 작품이란 점에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회자될 작품이라 생각했다"며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감정의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둬 연기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후배 배우 천우희, 이준과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은 최근 충무로에서 가장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는 20대 배우들로 평가 받고 있다. 류승룡은 이들에 대해 "잘한다. 영화를 통해 보여진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있는 배우들이다. 배우로서의 덕목과 열정이 훌륭한 친구들"이라고 했다.
천우희와 이준의 입장에서도 '연기 9단' 류승룡과의 작업이 큰 도움이 됐을 터. 류승룡이 이들에게 해준 연기와 관련된 조언은 없었을까.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연기에 대해서는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나까짓 게 뭐라고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해요. 그러다가 그들이 가진 신선함이 없어질 수도 있잖아요. 영화를 찍으면서 후배 배우의 연기에 대해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연기에 정답은 없잖아요."
그러면서 "배우의 연기는 현장에서는 감독이,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는 관객이 평가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배우 본인들이 자신의 연기에 대해 제일 잘 알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감정을 꺼내서 그것을 효율적으로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점이 어떤 배우든 가장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분장과 같은 외형적인 부분은 주변에서 다들 도와주시는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배우의 몫이거든요. 감정이 넘쳐도, 모자라도 안 되죠."
<손님>은 독특한 작품이다. 독일의 도시 하멜른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모티프로 한 점에서 그렇고, 쥐를 통해 인간의 죄와 본성에 대해 상징적으로 그려낸 점에서도 그렇다.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해요. 그게 드러나면 혐오스러우니까요. 거짓 평화와 같은 거죠. 그리고 그 죄를 덮기 위해 또 죄를 지어요. 그런 점에서 인간이 짓는 죄는 쥐와 비슷한 점이 있죠. 쥐는 항상 더러운 곳에 숨어있잖아요. 그리고 사람들은 혐오스러운 쥐가 밖으로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죠. <손님>은 획일화된 오락 영화가 아니에요. 행간을 찾아내고, 영화 속 비유와 상징을 사회나 개인에 대입해보면 좋을 영화죠."
류승룡은 "우리나라 관객들도 다양한 것을 볼 권리가 있지 않을까. 영화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고, 일단 영화를 보고 나서 판단해줬으면 좋겠다. 내 영화 중에 <손님>이 제일 좋다는 분들도 꽤 있다"고 했다.
이어 "이번 영화에 출연한 것을 배우 생활을 하며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류승룡은 배우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서는 "그저 순리대로 살고 싶을 뿐"이라고 전했다.
"배우 생활을 시작하면서 조금 불편함은 있었지만 만족하면서 살았어요. 그리고 얼굴이 알려진 뒤에는 많은 작품을 골고루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서 행복해요. 내가 뭔가를 이루고 싶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대신 연기를 하고, 영화를 찍는 과정을 재밌고, 신나고, 원없이 해야되지 않나 생각해요."
정해욱 기자 amorr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