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르'. 증류주에 과실, 꽃 등의 색과 향기를 입히고 당류를 첨가한 술이다. 올 상반기 국내 주류시장을 강타한 이들 제품군은 소주병에 담겨있어 흔히 '과일소주'로 불리기도 하지만, 소주보다 낮은 도수와 산뜻한 맛으로 젊은 층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롯데주류의 '순하리 처음처럼', 무학 '좋은데이 컬러시리즈' 등이 초기 리큐르 시장을 주도하는 와중에도 국내 최대 주류 제조사 하이트진로는 조용했다. 다소 굼뜨다고 생각할만한 행보였지만 준비를 완벽히 하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선보인 '자몽에이슬'은 세간의 예상대로 순조로운 판매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뒤늦은 출시였지만 그만큼 완성도 높은 제품을 내놓음에 있어 하이트진로 측은 구순효 수석연구원과 강석우 브랜드매니저의 역할이 컸다고 말한다. 실험실에서 끊임 없는 연구로 제품의 질을 끌어올린 구 연구원과, 현장을 뛰어다니며 상품가치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한 강 매니저가 없었다면 자몽에이슬의 성공은 불투명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이들을 만나 제품 탄생 배경과 개발 에피소드, 향후 저도주 시장에 대한 전망 등을 들어봤다.
하이트진로 구순효 수석연구원(우)과 강석우 브랜드매니저. (사진제공=하이트진로)
◆ "과일소주, 충분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출시는 안됐지만 (자몽에이슬과)비슷한 타입으로 준비를 했었다. 또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16도의 자몽 리큐르 제품, '진로 그레이프푸르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출시하지 않고 있었는데, 경쟁사가 리큐르 제품을 선보이며 우리도 제품 출시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구 연구원)
구 연구원과 강 매니저는 자몽 자체의 상품성을 매우 높게 판단했다. 리큐르 제품의 주된 판매 대상이 젊은 여성 고객인데, 이들이 자몽음료를 즐기는 것을 참고했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자몽이 레몬 다음으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또 소주 베이스와 과즙을 조합하면 예상했던 것과 다른 맛이 나는 경우도 많은데, 자몽의 경우 특유의 씁쓸함과 소주와의 조화가 맞았다."(구 연구원)
"소주랑 브랜딩 할 때 자몽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현재 자몽은 여성들에게 가장 '트랜디'한 과일이다. '덴마크 다이어트'라는 다이어트 방법이 있는데 그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자몽이다. 이미 여성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과일이라는 입증한 셈이며 최근 자몽에이드 등 관련 음료들이 잇따라 출시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강 매니저)
그러나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상품을 개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몽 외에도 아쉬운 제품이 있을 법 했다. 구 연구원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소주 베이스에 사과를 접목해 지난 2012년 '참이슬 애플'을 출시했었다. 하지만 가격때문에 시장안착을 못한 것이 아쉽다. 같은해에 유자, 복숭아, 레몬 등도 준비를 했었다. 전통적으로는 오이 딸기도 생각이 난다."(구 연구원)
◆"제작·평가 고된과정…자꾸마셔 취하기도"
인터뷰가 계속되면서 개발팀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애주가들에게 있어서 '꿈의 직장'이 될 법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역시 프로'라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기도 했다.
"오전에는 어제 만들어놓은 시제품을 가지고 어느정도 주질(주류의 질)이 나오는지 검사한다. 아침에 출근한 직후가 하루 중 가장 깨끗한 몸 상태로, 각종 감각들이 깨어나고 있는 시기다. 이때 전날 만들어놨던 제품에 대해 시음을 진행하고 평가한다. 그 이후에는 다시 제품을 만들어 오후, 저녁까지 평가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초기 버전이 17개 정도 된 것 같은데 집에 가져가서도 마셨다.(웃음)"(구 연구원)
구 연구원에게 연구·개발자란 직업의 어려움에 관해 물어봤다. '창조의 고통'이 가장 힘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돌아온 답은 '학습'이었다.
"주류 연구원은 개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첨가물, 제품의 콘셉트 등 여러가지 연구를 병행한다. 또한 정보나 자료, 연구논문 등을 검색해 우리가 모르는 부분에 대한 학습을 진행해야 한다. 배운 것들을 우리 제품에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국가적으로 양조연구소를 운영하는 등 소주 기술이 체계적이라 논문 등이 많다. 효모나 균을 다루고, 주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일어가 필수다."(구 연구원)
구 연구원은 자몽에이슬 개발 당시의 에피소드로 시제품을 정말 많이 마셔봤다고 말했다. 소주와 달리 자꾸 넘겨 고생을 꽤 했다는 설명이다.
"개발하면서 자몽에이슬을 많이 마셨다.(웃음) 보통 연구원들은 개발 과정에서 소주를 마시지 않고 입에 담아 목 초입까지 들여보낸 후 다시 뱉는 과정을 통해 맛을 본다. 하지만 자몽에이슬의 경우 도수가 낮고 맛이 있어 자꾸 마시게 되더라. 그러다 점심 때쯤 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운전을 못하게 돼 힘든 기억이 있다."(구 연구원)
◆"향후 저도주 시장 확대 전망…후속 제품 준비됐다"
강 매니저와 구 연구원은 향후 저도주 시장이 일정 부분 지속될 것이며 소비자들은 점점 더 낮은 도수의 소주를 찾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소주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제품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가다.
"아직까지 전체 주류 시장에 비하면 리큐르 시장의 규모는 매우 미미하다. 또 리큐르 시장은 유행에 민감하고 변화가 많은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주류시장의 전반에서 알코올도수 저도화, 맛의 다양화라는 흐름이 지속되고 있어 당분간은 리큐르 시장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강 매니저)
"2001년에 소주는 21도였다. 2007년 '참이슬 후레쉬'를 낼때 도수를 낮추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19.8도를 낸거다. 사람들이 물 맛이 많이 난다고 해 20도 아래로 내려가는 것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한 시기였다. 하지만 현재 자몽에이슬은 13도다. 점점 더 부드러운 맛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 맛을 없에고 소주 맛은 살리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구 연구원)
또 이들은 저도주 시장의 인기에 맞춰 후속 제품의 준비가 이미 완료됐으며, 조만간 주점에서 뿐 아닌 가정에서도 기존 자몽에이슬을 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자몽에이슬의 성공은 자몽의 떫고 쓴맛을 줄이고 단맛과 향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후속 제품 역시 당연히 준비됐다. 개발이 완료된 상태며 출시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구 연구원)
"자몽에이슬의 판매 목표는 초기에 월간 기준으로 대략 500만병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현재 수요가 집중된 시장을 중심으로 보다 많은 고객에게 제품을 선보이는 차원에서 수도권 지역 주요 상권에 먼저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상태다. 향후 생산을 확대하고 수요가 안정되는 시점에 점진적으로 공급을 확대할 예정이다."(강 매니저)
■구순효 수석연구원 프로필
- 1964년생
- 서울대 농대
- 1989년 진로 입사
- 하이트진로 연구소 연구지원팀
- 하이트진로 연구소 주류개발2팀
■강석우 브랜드매니저 프로필
- 1974년생
- 중앙대학교
- 2001년 진로 입사
- 하이트진로 마케팅팀
-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소주브랜드팀
이철 기자 iron62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