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녕 변호사
국가정보원이 또 다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민간인 해킹 의혹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의 해킹프로그램 구입으로 촉발된 논란은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불길이 옮겨 붙으면서 여야 간 정치공방이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프로그램 구입과 해킹업무를 직접 담당했던 국정원 직원이 갑자기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이후 야당의 공세가 더욱 거세다. 죽음을 선택한 국정원 직원은 유서에서 "정말 내국인과 선거에 대한 사찰은 없었다."고 하면서도 가족에게 "짊어질 짐이 너무 무겁다"고 썼다. 공무원이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짐'이 얼마나 무거우면 그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짐작하기도 어렵지만,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짐'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이 해외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한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통신 등 신호를 통해 첩보를 비밀리에 수집하는 신호정보수집(SIGINT)은 정보기관 활동의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국정원법은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를 국정원 업무로 정하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도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에 관한 정보수집이 필요한 때에 통신제한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정원은 필요한 프로그램을 구입할 수 있다.
해킹 프로그램 구입이 적법하다고 해서 국정원이 마음대로 민간인 사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정원 직원의 정치 관여는 엄격히 금지되고, 국가안보를 위한 통신제한조치를 하더라도 국정원장은 통신비밀보호법에 규정된 적법절차에 따라야만 한다. 국정원은 통신의 일방이나 쌍방당사자가 내국인인 때에는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에 적대하는 국가, 반국가활동의 혐의가 있는 외국의 기관·단체와 외국인,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사실상 미치지 아니하는 한반도내의 집단이나 외국에 소재하는 그 산하단체의 구성원의 통신인 때에는 서면으로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것도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에 한하여 그 위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에 관한 정보수집이 특히 필요한 때에만 가능하다. 결국 이번 논란은 국정원이 해킹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내국인을 대상으로 삼았는지, 그럴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았는지, 북한 공작원이나 외국인 등에 대한 활동을 한 경우 서면으로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는지를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이른바 적법절차를 지켰는지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란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에 대해 정치권의 논쟁이 거칠다. 새정치연합은 지금을 ‘빅시스터 사회’로 규정하며 청와대로 칼날을 겨눴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속의 ‘빅브라더’(정보 통제·감시를 통한 독재자)를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점에 빗대어 ‘시스터’로 바꿔 부른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이병호 국정원장 상대 국회 긴급현안질문 실시, 의혹 규명을 위한 청문회 개최 등을 요구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국정원장을 상대로 대정부질문을 하면 국가 기밀 누설이 불가피한데 그러면 현행법 위반이 된다. 또 전례도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1차적 진상 조사는 국회 정보위원회가 담당하는 것이 맞다. 정보위원회는 국정원에 대한 상시 감시 기능을 맡고 있고 위원들에게 보안유지 의무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보위원회의 진상조사 결과 위법사실의 단서가 나오면 그 때는 검찰이 나서면 된다. 정치적 논란에 국정원의 정보 역량을 외부에 노출시키고, 그 과정에서 안보에 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국민들은 진실 규명을 바라는 것이지, 정쟁의 확대재생산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대하는 국정원의 반응도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정원은 지난 15일 이번 논란에 대해 매우 이례적으로 국정원의 입장을 직접 밝히고, 임모 팀장 사망 직후인 17일에는 직원일동이 '동료직원을 보내며'라는 글을 통해 "자국의 정보기관을 나쁜 기관으로 매도하기 위해 매일 근거 없는 의혹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면서 정치권을 비난했다. 국정원이 정치권에 대해 정치적 집단행동을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정원법은 직원이 그 직위를 이용하여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국정원도 본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