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북한 방문 날짜가 다가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 여사를 통해 대북 메시지를 전달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 임기 동안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나타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이 여사 방북을 적극 활용할 뜻은 많지 않아 보인다.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언론 기고와 인터뷰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이 이 여사에게 의미 있는 대북 메시지를 들려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여사에게 대통령 특사 자격을 부여한다거나 친서를 맡길 필요는 없지만, 남북관계를 잘 해볼 뜻이 있다는 구두 메시지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경우 이 여사는 김 제1위원장에게 북한에 억류된 남측 국민 4명의 송환을 요청할 수도 있고, 얘기가 잘 풀리면 이 여사가 돌아오는 비행기에 그들이 함께 타고 올 가능성도 있다고 정 전 장관은 기대했다. 박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와 억류자 송환을 교환하는 셈인데, 그런 과정을 통해 신뢰를 쌓고 남북관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박 대통령이 구두 메시지를 전달할 경우 지난해 10월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남측을 방문한 북한 실세 3인방을 통해 전달된 김 제1위원장의 인사말에 화답하는 ‘간접 대화’가 이뤄지는 측면도 있다.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인천에 온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류길재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따뜻한 인사 말씀을 박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는 적극적이지 않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KBS> ‘일요진단’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여사를 대북 특사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 여사의 방북은 이 여사님의 개인적인 차원에서, 관련 단체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그 의미는 최대한 살리고자 하지만 개인 차원의 방북을 특사로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조금 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방북에 들어가는 비용의 일부를 남북협력기금으로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통일부는 말을 아끼고 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31일 정례브리핑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쪽의 구체적인 지원 요청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먼저 나서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할 뜻은 없음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됐다. 방북의 의미를 키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 여사는 5일 오전 10시 김포공항에서 이스타항공 비행기를 타고 출발해 서해직항로를 이용해 북한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3박4일 동안 평양에 머물며 평양산원, 애육원, 아동병원, 묘향산을 방문한 후 8일 오전 11시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출발해 서울로 돌아온다. 숙소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2011년 김정일 위원장 조문 방문 때 사용한 백화원초대소와 묘향산호텔로 정해졌다. 이 여사가 북측에 전달할 선물은 본인이 직접 뜬 털목도리와 의료·의약품 등이다. 출발 당일 발표되는 방북단은 20명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이나 임동원·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여사는 지난 30일 취임 인사차 동교동을 발문한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이번 방북에서) 6·15 공동선언의 조항을 남북 양쪽이 다 지키면 좋겠다는 말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이희호 여사가 지난 3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온 심상정 정의당 신임 대표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