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동통신사들이 잇따라 약정·보조금 제도를 폐지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이동통신 시장도 장기적으로 이같은 흐름을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1위 이통사 ‘버라이즌’은 약정에 따라 지급하던 보조금 제도를 폐지하고 지난 13일부터 새로운 요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버라이즌에서 휴대폰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는 일시불 또는 할부를 선택해 단말기 가격 전액을 지불해야 한다.
대신 버라이즌은 스마트폰 한 대당 월별 40달러씩 과금하던 접속요금(Monthly line access fee)을 월 20달러로 낮추고, 데이터 제공량에 기반한 간편요금제(▲스몰(1GB) 30달러 ▲미디엄(3GB) 45달러 ▲라지(6GB) 60달러 ▲엑스라지(12GB) 80달러)를 새로 선보였다.
이에 앞서 T모바일은 지난 2013년 초부터 약정·보조금 제도를 없앴고, 스프린트도 내년부터 폐지할 계획이다. 최소한의 보조금 제도를 운영 중인 AT&T도 대리점이나 직영점이 아닌 곳에서 구입하는 소비자에겐 약정 할인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행인들이 휴대폰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에 대해 “신규 가입자 유입은 정체됐지만 경쟁은 치열해진 미국 통신시장 여건으로 인해, 이통사 수익성 유지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아울러 단말 자체의 가격 경쟁이 치열해진 데 따른 변화로도 해석된다. 미국 이통 시장은 지원금 제도, 제조사와 이통사가 묶여 있는 유통구조 등에서 국내 시장 구조와 유사한 만큼, 통신 정책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도 미국의 이같은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류제명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미국 이통사들의 변화는 그동안 단말기에 직접 지원금을 지급해 가입자를 유치했지만 앞으로는 요금·서비스 쪽으로 리소스를 투입하겠다는 메시지”라며 “프리미엄폰에 대한 기대가 꽤 충족됐고 고사양 중저가폰들의 경쟁력이 높아진 만큼 소비자들 사이에 비싼 단말을 약정해 지원금을 받는 것 외에 다른 합리적 선택지가 많아졌다는 점을 이통사들이 간파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통사들의 수익성이 나빠지는 와중에 단말 제조사끼리 가격 경쟁이 붙고 있다면 굳이 지원금과 요금에 비용을 이중 투입할 필요성이 줄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버라이즌의 종전 요금제에선 신규 가입자가 아이폰6를 구입할 경우 2년 약정을 통해 출고가 649달러인 제품을 200달러에 살 수 있었다. 앞으로는 기기값은 전액을 내야 하지만 접속요금이 20달러 인하됐기 때문에 이를 24개월로 환산하면 480달러가 줄어 고객 혜택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설명이다.
류 과장은 “단말과 서비스가 묶여서 경쟁하는 것보다 단말은 제조사끼리 경쟁하고 이통사는 요금·서비스에 집중해야 소비자에게 유리해진다”며 “단말기 유통법 역시 이런 시장 환경을 지향하고, 국내 시장도 점진적으로 이같은 흐름을 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국내 시장에 약정·지원금 제도 폐지가 당장 적용되기는 쉽지 않다. 아직 국내 소비자들은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때 단말기 고려 비중이 높고, 이통사들도 단말 비용을 낮춰 소비자를 유치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국내 시장에도 다양한 중저가폰들이 도입되고 있는 만큼 소비자 입장에서 단말 구입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점차 해소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단말기 유통법 시행 이후 데이터 요금제 등이 출시되며 요금제 자체에 대한 이용자 관심도 비교적 높아진 상황이다.
이통사 측은 미국과의 시장 환경, 법·제도적 차이 등으로 직접 비교는 어렵다면서도 큰 흐름에 대해선 동의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SK텔레콤(017670) 관계자는 “미국과 우리나라 모두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져 많은 재원을 지원금에 투입해 가입자를 유치할 유인이 떨어지고 있다”며 “아직은 국내 경쟁 환경상 지원금을 없앨 수 없지만, 수익성 악화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사업자들도 겪고 있는 만큼 지원금 축소를 비롯한 여러 방법을 고안해야 할 시기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미연 기자 kmyttw@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