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검색어 순위 윗자리를 한동안 지켰다. 액션 영화로 인기를 모은 배우 리암 니슨이 더글러스 맥아더 역을 맡기로 한 소식 덕분이었다. ‘더글러스 맥아더’가 한국으로 온다고 하니, 왠지 야릇했다. 삼성의 편법 승계, 롯데가 형제의 난, 수감된 재벌 총수들의 광복절 특별 사면 등등. 재벌이 일으킨 문제가 불거진 요즘이라서 그런 듯싶다. 맥아더는 일본의 자이바쯔(재벌, 財閥)를 해체했었으니까.
재벌은 학벌·군벌·족벌 등과는 다르다. 영어로 번역된 단어도 없고, 사전은 ‘chaebol’, ‘zaibatsu’라 풀이한다. 재벌과 자이바쯔를 각각 음역했을 뿐이다. 총수 및 그 가족이 소유, 지배하는 기업은 번역하기 곤란할 만큼 희한한 것이다. 자이바쯔는 재벌과 비슷하지만 보다 개방적이었는데, 경영에 재능 있는 사람을 가문에 들이기도 했다. 어쨌든 맥아더의 군정 아래 일본의 자이바쯔는 해체됐다. 그 빈자리에 ‘게이레쯔(계열)’, 즉 전문경영인의 연합체가 들어섰다. 이른바 ‘조직의 미쓰비시, 인간의 미쓰이, 결속의 스미토모’는 반세기 전에 사라진 것이다. 미군정의 집도(?)는 경과가 좋았던지, 체질을 바꾼 일본은 경제 강국이 됐다.
한국에는 아직 ‘관리의 삼성’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재벌을 벌초한 미군은 한국에서는 재벌의 씨를 뿌렸다. 일제가 도망치다 한반도에 남기고 간 재산을 미군정이 민간에 팔았다. 적산기업은 재벌 탄생의 요람이었다. 여당 대표 김무성의 아버지 김용주도 그 요람에서 컸다. 식민지 시절에 ‘일본과 조선은 한민족’이라 설파하던 그는 광복 이후 미군정으로부터 적산기업을 불하받았다. 전남방직을 설립했고 1950년대 대기업 23곳 중 하나의 회장이 됐다.
미군정은 한국 재벌의 산파였고 박정희를 필두로 한 군부는 재벌의 유모였다. 요즘 두 아들의 골육상쟁에 시달리는 신격호 롯데 그룹 설립자와 박정희는 각별한 사이였다. 박정희는 신격호를 청와대로 불렀다. 롯데가 제조하던 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되어 제조 정지 명령이 내려진 날이었다. 청와대는 롯데껌 파동을 처리해주기로 했고, 신격호 회장더러 롯데호텔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전두환의 지시로, 롯데월드 건설에 구청, 시 본청, 관세청, 재무부 등의 거의 모든 공공기관이 팔을 부르걷고 나섰다. 알다시피 정경 유착은 롯데의 사례 말고도 부지기수였다.
군사정권은 재벌을 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삼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 재벌이 군부에 정치 자금을 댔으니 ‘실리’도 챙겼다. 설립자는 죽을 때까지 총수 자리를 지켰다. ‘세자’가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이제 ‘세손’이 차례를 기다린다. 조선 시대나 북한을 방불케 하는 전근대적 세습의 비용이 만만찮다. 상속세를 제대로 냈다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이 치르는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최근 삼성은 세 번째 승계 도중 홍역을 치렀다. 이른바 애국심 마케팅으로 제품을 판매하더니, 이제 상속 문제까지 해결했다. 후폭풍이 거세다. 국민연금의 손실만 해도 수천억 원이다. 계상할 수 없는 사회적 자본, 예컨대 국가 신인도나 브랜드 가치가 상당히 떨어졌을 게다. 삼성뿐 아니라 현대, 엘지, 두산, 요즘의 롯데까지. 상속 때마다 ‘막장 일일 연속극’이 생중계됐다. 생각건대, 자이바쯔보다 재벌이 우수해서 여태 연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했다. IMF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 계속 집권했더라면 1980년대 어느 시기에 재벌 주도형 경제를 고쳤을 것"이라며, "재벌 위주 성장의 부작용이 드러난 1980년대 들어 이를 고쳤어야 했지만 시기를 놓쳤다"고 했다. 그러나 재벌 개혁은커녕, 공약했던 경제 민주화조차 8월 6일 담화문에 일절 넣지 않았다. 그날 청와대 춘추관에 울려 퍼진 구호는 ‘재벌 개혁’이 아닌 ‘노동 개혁’, ‘경제 민주화’를 대체한 ‘경제 대수술’이었다. 이제 '재벌(chaebol)의 막장극'에 욕지기를 느낀 국민들이 ‘박근혜’ 대신 ‘맥아더’를 외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맥아더. 캡처/바람아시아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