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접촉이 43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군사적 위기를 극복하고 합의문을 만들어 내 이산가족 상봉 추진이라는 성과를 낳게 되어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DMZ 지뢰 사건’ 이후의 전 과정에서 보여준 남측에 대한 북한의 자세는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협상 자리에 앉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국가 기관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을 비롯한 외곽단체의 입을 총동원해 대남 비난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협상 과정과 결과, 그리고 이후 나온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김양건 대남 비서 등의 발언을 보면 북한이 남북관계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합의가 발표된 25일 오후 북한 TV에 직접 출연한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지뢰 사건의 전모를 부인하는 듯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있었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분위기가 마련된 것이 다행이라는 내용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특히 남측에서 일고 있는 논란을 의식한 듯 27일 김양건 비서는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합의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8·25 합의를 이뤄낸 후 나온 북측 대표들의 이런 발언들은 접촉 전 북한 매체를 통해 흘러나오던 반응과는 매우 달랐다. 14일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담화, 15일 전선사령부 공개경고장, 16일 조평통 대변인 담화에 이어 20일 최고사령부 긴급보도와 21일 외무성 성명과 같은 일련의 반응들은 마치 곧 전쟁이 발생할 것과 같은 분위기였다.
‘48시간 내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에 들어갈 것’이라는 최고사령부의 최후 경고가 고위급 접촉을 갖는 계기를 만들었지만 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자세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북한은 먼저 대화 제의를 했고, 우리의 수정 제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화가 시작돼서도 협상을 하는 시늉만 하지 않았고 10시간여 동안 대화한 후 이틀째는 무박 2일에 걸쳐 30여 시간이나 대화에 임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이 적실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기존 북한의 대화 자세와 비교할 때 사뭇 다른 모습이다.
또 처음부터 김양건 비서를 대화에 참여시킨 것 역시 주목할 만한 일이다. 남측의 요구에 따라 황병서 총정치국장도 함께 나오긴 했지만 사실상 북한 대남 사업의 실무책임자가 김양건 비서라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당초부터 북한이 김 비서를 선택한 것은 이번 사태를 제대로 다루고자 하는 의도와 더불어 사안의 긴급성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게 했다.
더욱이 북한이 남한에 대한 심기가 매우 불편할 때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대적으로 더 적극적이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으로 인해 남한에 대해 매우 불만스러운 입장을 가졌던 시기였다. 또 5일 이희호 여사의 방북 후 남측이 고위급회담을 제의한 데 대해 북한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 이 여사는 빈손으로 방문했는데 반해 이 여사 일행의 평양 도착 30분 후 판문점을 통해 통일부 장관 명의의 중대 제의가 도착하면서 김 위원장의 초청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있었던 시점이었다.
이러한 북한이 ‘DMZ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화하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변화가 갑작스럽게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지속적으로 희망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어느 해보다 남북관계에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 북한 매체들도 꾸준히 남북교류의 필요성과 남북 합의의 계승을 강조해 왔다. 이번 8·25 합의문 마지막 항에 ‘민간교류 활성화’가 포함된 것은 북한이 가장 원하던 것이다.
북한 시장이 커지고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국면이기 때문에 주변국과의 경제 협력이 중요하며, 특히 같은 민족과의 교류는 어느 때보다 절실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시점에 발생한 군사적 위기 상황을 오히려 상생의 기회로 만들려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북한의 처지였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