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상이 대형보험사 최초로 후순위채 발행을 결정했다. 예상 규모는 4000억원대로 지급여력비율(RBC)을 높이기 위해서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전날 이사회를 통해 자본확충을 위한 4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을 결정했다.
올해 6월말 기준 현대해상의 RBC비율은 162.3%로 올해 3월말(180.2%)에 비해 17.8% 하락했다. 이는 하이카다이렉트 인수와 장기보험의 손해율 증가에 따른 것이다.
물론 현대해상의 현재 RBC비율이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IFRS2단계 도입이 예정된 상황에서 선제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서 자본확충 결정했다.
보험업계에서는 IFRS2단계가 도입되면 부채를 시가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RBC비율이 30~40%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해상은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후순위채를 발행하기로 결정한 것.
또한 업계에서는 지금이 후순위채 발행의 최적기라고 보고 있다. 후순위채의 경우 매년 이자를 내야 하는데 현재 3% 초반대에 후순위채 금리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9일 1000억원 규모의 제2회차 후순위채를 발행한 메리츠화재(신용등급 AA)의 발행금리는 3.22%였다.
문제는 후순위채는 이자가 발생하고 만기시에는 자본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현대해상의 경우 3% 초반대 금리가 예상돼 이자에 대한 부담은 덜하지만 잔존만기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다.
후순위채는 잔존만기 5년부터 20%씩 자본에서 차감된다. 예컨대 2020년 만기로 총 1000억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한 회사의 경우 2016년부터 200억원씩 차감돼 2020년에는 발행한 1000억원 모두 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만기 시 까지 1000억원 가량의 자본을 쌓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원금1000억원과 자본에서 빠지는 1000억원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결국 현대해상은 4000억원에 대한 원금과 이자에 대한 부담은 물론이고 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점까지 4000억원 가량의 자본을 더 쌓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이자만 내고 후순위채 발행 효과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리스크가 있지만 현대해상은 후순위채를 택했다. 보험사의 자본확충 방법은 유상증자, 만기보유금융자산 회계처리 재분류, 후순위채 발행 등이 있다. 하지만 유상증자의 경우 최대주주지분 방어와 주가하락 부담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다음은 비용도 발생하지 않고 수월한 회계처리 재분류다. 만기보유금융자산을 시가로 평가받게되면 현대해상은 2600억원의 평가이익을 받아 RBC비율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자본마사지'로 불리는 회계처리 분류는 현대해상의 리스크 관리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결국 쉬운길이 있지만 정도를 지키기 위해 금융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후순위채 발행을 선택한 것이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다가오는 IFRS2단계에 대비해 미리 자본을 확충하기로 한 것"이라며 "금융비용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정도를 지키기 위해 후순위채 발행을 통한 자본확충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종호 기자 sun126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