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다양화시대, 인권시대를 역행하는 국정교과서

입력 : 2015-10-16 오전 6:00:00
김인회 인하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검정제에서 국정제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되면 교육현장에서 단 하나의 역사책만 살아남게 된다. 역사에 관한 한 단 하나의 관점과 가치가 남는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교과서는 학교에서 볼 수 없다. 역사교과서 수요자인 선생님과 학생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현대 사회에서 역사보다 더 필수적인 휴대폰도 여러 회사에서 만들고 시장에서 선택을 기다리는데 역사교과서는 그렇지 못하게 되었다.
 
국정교과서는 창의성과 독창성이 요구되는 다양화시대, 국제화시대, 인권시대에 역행하는 선택이다. 여러 나라 학생들이 한곳에 모여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자유에 대한 회의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국제회의에서 토론을 하고 결론을 내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 다른 하나는 공통의 가치이다.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대화 자체가 안 된다. 그리고 공동의 행동을 끌어내려면 공통의 가치에 기초해야 한다. 국제회의에서는 다양한 관점과 이야기를 이해하면서도 이에 매몰되지 않고 공통의 보편적인 가치에 기초한 행동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국제회의에서 단 하나의 역사를 배운 사람보다 여러 역사책을 통해 다양한 내용을 배운 사람이 유리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누가 더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더 잘 판단하고 더 새로운 의견을 낼 것인지는 불을 보듯 명확하다. 하나의 관점과 가치만을 가르치는 국정교과서는 다양성과 포용, 창의성, 공통의 가치 등과 대척점에 서 있다.
 
국정교과서의 위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국정교과서는 학생을 민주시민으로 대하지 않는다. 지식을 주입함으로써 학생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고 본다.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행동하는 자주적인 주체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검정제 교과서로 학생들이 타락했다고 보는 것 역시 학생들이 주입되는 생각에 휘둘리는 아무 생각 없는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다. 물건일 뿐이다. 국정교과서는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치면 가르치는대로 배워야 하는 수동적인 물건으로 본다.
 
하지만 학생들은 온전한 인격체이고 또 능동적 주체이다. 물론 배워야 하는 단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중학생, 고등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세계의 실상을 알 권리가 있으며 이를 바꾸기 위해서 행동할 권리가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이러한 권리를 학생이라고 부인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학생도 민주시민의 일부이고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 교양을 쌓고 있는 존재이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세계의 실상을 알고 이를 바꾸기 위해 행동한 학생들은 일제시대에는 독립투사가 되었고 독재시대에는 민주투사가 되었다. 깨어있는 학생들이 역사를 바꾸어 온 것이 우리의 역사이다. 역사는 학문이므로 보편타당한 관점에서 정리되고 서술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편타당한 가치를 배워야 한다. 우리만의 가치는 학문과 역사의 현장에서는 발붙일 수 없다.
 
우리만 자랑스럽고 유구한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만 국가의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만의 역사서술은 위험하다. 국가관에 기초한 역사는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침해할 수 있어 위험하다. 당장 한·중·일의 역사 서술이 충돌되는 것은 삼국이 모두 민족주의에 기초하여 자국 중심의 역사를 서술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보편적인 가치에 근거해 서술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평화 등이 보편타당한 가치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가치에 근거할 때 비로소 다른 나라를 이해할 수 있고 또 다른 나라를 비판하고 설득할 수 있다. 우리가 일본 정부에게 과거사 정리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단순히 식민 지배를 당했다는 것을 넘어서서 일본의 침략이 인권과 평화를 크게 위협한 행위였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면 우리 역사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극단적인 국가적 관점도 배제할 수 있다. 온전한 인격체로서 학생들은 이 모든 것을 배우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다. 다양한 관점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더 주체적이고 더 능동적이며 더 창의적이고 더 정의로운 사람이 된다. 학생을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물건,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들려는 국정교과서는 지금이라도 중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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