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곳간..증세 vs. 감세]②조세 포퓰리즘의 함정

갈피 못잡는 세정..국민만 혼란
"부자감세로 구멍난 재정, 서민증세로 메운다?"

입력 : 2009-07-2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정책팀]  조세정책은 나라의 근간임에도 정부와 여당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왔다갔다하면서 국민들만 혼란에 빠졌다. 여론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부자감세 서민증세'를 주장하는 쪽과 '부자증세 서민감세'를 주장하는 쪽의 두 부류다. 말의 의미를 꼽씹어보니 어느 한쪽은 분명히 세금을 깎아주고, 어느 한쪽은 세금을 더 걷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감세도 하고 증세도 한다는 말이다. 왜 그런지 나라의 곳간 사정부터 들여다 보자.

 

올해 국가채무는 366조원으로 지난해 대비 사상 최대폭인 57조7000억원이 늘었다. 국내총생산(GDP)의 35.6%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자 부담도 따라 늘어났다. 올해 이자부담액은 15조7000억원이고, 내년에는 19조원을 넘어 2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내년 국가채무는 4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다. 국가채무는 국고채권, 외평채권, 국민주택채권, 국내외 차입금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내년에는 빚을 더 얻어야 할 형편이기 때문에 대규모 국고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 돈 쓸 곳 많은데 쓸 돈이 없다

 

결국 세금을 걷어서 쓸돈도 마련하고, 빚도 갚아야 하는데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세수 규모는 올해 세수 규모 168조700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 예산은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301조8000억원이다. 

 

이 정권들어 '감세'를 추진하면서도 새로 벌이고 있는 투자사업에 들어가야 할 예산이 줄을 서 있다. 예산은 더 늘어나야만 한다는 결론이다. 곳간은 텅비었는데 돈 쓸 곳은 늘어나는 형국이다.

 

예기치 못한 재난으로 올해 빚까지 내서 돈을 많이 당겨 썼더니 내년에는 이자 갚기도 빠듯하다. 그런데 큰 아들이 전부터 벌여오던 사업에는 돈을 계속대줘야 하고, 같이 살고 있는 둘째가 내년에는 집 분위기를 꼭 바꾸겠다며 집 일부를 뜯어 고치려고 한다. 수리비는 자기가 반을 낼테니 반은 가장인 아버지가 부담하라며 밀어부친다.

 

게다가 지방 소도시에 사는 형편이 어려운 막내가 요즘 불경기라 아이들 학원비를 못내고 있으니 손주 학원비 좀 보태달라고 아우성이다. 가장인 MB보다 살림살이를 맡은 '재정부'가 더 속이 탄다. 원래 가장은 살림살이에 신경을 별로 안 썼으니까.  

    

그래서 '증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정권 초기 빅이슈였던 '부자감세'라는 말에 '서민증세'라는 논리가 하나 더 붙었다.

 

'서민증세'의 논리는 이렇다. 정부가 인상을 추진하다 여당에서 '브레이크'가 걸린 술이나 담배에 붙는 세금을 올리는 이른바 '죄악세(sin-tax)'는 간접세다.

 

100평 아파트에 사는 부자건, 월세 20만원의 주택에 세들어 사는 4인 가족의 가장도 소주 1병을 사서 마시면 똑같이 440원의 세금을 낸다. 간접세는 납세자가 부자건 가난하건 가리지 않고 일괄 부과된다. 문제는 소주값을 올리면 돈 없는 서민들이 더 큰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 서민부담 간접세 비중↑, 부자부담 직접세 비중↓

 

현 정부 들어 전체 조세수입에서 이 같은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7년만에 증가세로 전환됐다.

 

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와 지방세를 합친 전체 조세수입 212조8000억원 가운데 간접세 비중은 41.6%로 88조6000억원 규모였다. 지난 2007년에는 41.3%였고, 올해는 43.5%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이후 줄어들던 간접세 비중이 이 정부 들어 증가한 것이다.

 

반면 직접세인 종합부동산세는 올해 1조4724억원 줄어들고, 내년도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 규모는 11조2000억원인 점에 비춰 내년에는 간접세 비중이 45%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부동산세, 소득세, 법인세 등 소득이나 재산에 따라 과세되는 직접세는 주로 재산이나 소득이 많은 부자들이 낸다. 그래서 '부자감세, 서민증세'란 논리가 만들어 진다.

 

선진국들의 직접세와 간접세 비중은 7대3 정도다. 지난 2006년 기준 우리나라의 직접세 비중은 48.2%다. 미국은 92.7%, 일본은 62.4%, 영국은 59.1%다. 간접세의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후진국형 조세구조인 셈이다.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 부과도 마찬가지다. 대형 TV나 냉장고, 에어컨, 드럼세탁기 등 4종의 고가품에 대해 개별소비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으나 이도 역시 서민에게 부담은 마찬가지다.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고 요즘은 혼수 필수품이어서 상대적으로 서민들에게 더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 이 때문에 부자감세로 구멍난 재정을 서민증세로 메우려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재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소득세율을 일률적으로 조금씩 조정은 했지만 내지 않는 계층에게는 별로 혜택이 없었고, 법인세도 기업쪽이 혜택을 봤고 자영업자는 그런 게 없었던 거다"면서 "한쪽 집단에서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한쪽으로 치우친 정책이었음을 전문가들도 인정한 것이다.

 

◇ '부자감세 서민증세'라고? 


이에 반해 '부자증세 서민감세'라는 주장도 나온다. 서민증세의 논리와 반대로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세금을 늘리고, 서민과 중소기업의 조세부담을 덜어준다는 논리다.

 

대표적으로 올해말 일몰이 돌아오는 임시투자세액공제와 전세보증금 3억원 이상 임대소득세 부과, 법인세 2억원 초과시 현행 세율 유지 등을 예로 든다.

 

투자금액의 3~10%만큼 법인세를 깎아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의 80%는 대기업이 부담하는 만큼 이를 폐지하는 것은 대기업에 세금을 더 물리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또 3주택 이상 주택보유자가 전세보증금으로 받은 돈이 3억원을 넘으면 내년부터 임대소득세를 내도록 한 것도고소득층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이고, 내년부터 시행될 법인세 감면대상에서 2억원 초과 기업의 경우 현행 세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등은 '부자증세'안 이라는 주장이다.

 

이밖에 종합부동산세를 재산세로 통합해 고액자산가에게 세금을 물리고, 신용카드 공제한도도 연봉의 20%를 넘는 금액의 20%까지 500만원 한도로 공제해주던 것을 500만원보다 낮추는 방안 등도 '부자증세'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부자증세 서민감세'를 주장하는 쪽은 상속세·증여세 인하를 유보하는 것에 대해 강한 반발을 표시하기도 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감세) 정책자체를 너무 폄하시키는데 일종의 말을 교묘하게 만들어서 듣는 사람의 분노를 자아내서 부자감세라고 하지 말고 그냥 감세라고 하면 된다"면서 "위기를 맞아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 있어 확장적, 팽창적 재정지출을 사용할 때 재정지출을 늘이는 것만 하지말고 감세를 같이 병행하라는 것이 IMF의 권고사항"이라고 반발했다.

 

윤 교수는 또 "참여정부 시절에 굉장히 세금이 빨리 늘었다. 세금증가 그렇게 속도가 빨랐는데 지금 또 (세금을) 늘리자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글로벌하게 봐서 종합부동산세는 우리 밖에 없다. 좋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른 나라와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감세'를 지지하는 재계도 거들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14일 "감세계획을 유예하는 것은 다음 농사에 쓰일 볍씨를 미리 까먹는 것"이라고 감세유예를 비판했다.

 

올해 세제개편 과정은 이래저래 시끄러울 것 같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국회는 조세저항을 우려해 '조세 포퓰리즘'에 빠질 공산이 크다. 국회가 조세저항으로 몰락한 일본 자민당의 교훈을 잊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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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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