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장
“5년짜리 정부가 감히 5000년 역사를 왜곡하느냐.”, “아빠 생신 백주년에/ 어떤 것을 선물할까/ 이리 생각 저리 생각/ 우리 아빠 친일독재/ 나쁜 과거 세탁하자/ 교과서를 국정하자/ 백년만년 찬양되리.”, “2015 이 시대 최고의 효녀가 온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절절한 사부곡. ‘너희 가족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나도 효녀다. 효도는 집에서.”
정부가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청소년들이 대자보 백일장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들이다.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지금의 국정화 정국을 제대로 꿰뚫고 있어 감탄할 정도이다. 국정화가 실시되면 그 교과서로 배워야 할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되는 당사자이니 만큼 그 목소리 또한 절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들 청소년들은 매주 토요일 인사동에서 춤과 노래로 발랄하면서도 진지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특별히 조직된 것도 아니지만, SNS를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연락을 취하며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온 것이다.
또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매일 저녁 피켓을 들고 광화문 거리에서 국정화를 막아줄 것을 시민들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고등학생도 있다. 이 학생에게 간식이며 음료수를 사다 주고 안아주는 시민들도 있다. 인터넷에서 이 학생의 모습을 본 어느 역사 강사는 부끄러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며 매일 학원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며 먹고 사는 어른으로서 도저히 정부의 국정화 강행 방침을 '좌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쓰여 있는 국정교과서로 교육을 받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하고 맹세해야만 했던 국정교과서 세대의 자화상을 되돌아본다. 오로지 입시 공부에만 전념할 것을 강요받고 일체의 사회적 행동과 발언이 금지되었던 시대. 청소년은 없고 오로지 학생만 존재하던 군사독재 시대에 지금처럼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자유롭게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군사독재에 맞서 시민들이 피를 흘려 얻어낸 민주주의가 바로 오늘의 멋진 청소년들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국정을 책임지고 있다는 어른들의 행태는 어떠한가. 사상 최악의 가뭄에 농부들의 마음은 타들어 가고,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헬조선'에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N포 세대'라며 자조하고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에는 아랑곳하지 않던 그들이 느닷없이 국정화라는 꼼수를 들고 나와 온 나라를 갈등과 혼란의 도가니에 밀어 넣었다. 자신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명백하게 어긋나는 국정화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종북’이니 ‘빨갱이’라고 매도하며, 변명과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단 말인가.
이제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청소년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또래의 친구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올바른’ 역사를 세운다는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청소년들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국정화 교육이 필요한 청소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