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대기업 구조조정에 칼을 뽑아들었지만 최종 기업 선정에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금융당국과 은행권에서는 좀비기업 선별작업을 마무리했지만 이들을 모두 쳐냈을 경우 후폭풍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번에도 좀비기업이라는 곪아터진 환부를 제대로 도려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행권에서도 대기업 하나가 좀비기업으로 판명나면 충당금 부담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부담스러운 모양새다.
9일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누가 병자인지 몰라서 구조조정을 못하는 게 아니다. 반대도 있고 비용문제도 있어 빨리 잘라내고 싶어도 쉽지 않은 것"이라며 "나중에 자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객관성을 문제삼는 목소리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선별이 어려운게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워 고민하는 것"이라며 "구조조정이란 것이 인체를 수술하는 것처럼 고통이 따르는데 서로 책임을 돌리는 데만 급급할 뿐 아무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옥석가리기' 작업은 어느정도 완료된 상태이나 후환이 두려워 환부에 칼을 못대고 있다는 지적이다.
A은행 관계자는 "대기업 같은 곳은 상시평가 운용협약에 의해 4~7월 이미 정기신용평가를 거쳤기 때문에 어디가 좀비기업인지는 이미 윤곽이 나왔다"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도 "결과 발표가 나면 기업들은 왜 우리가 좀비기업이냐며 심하게 반발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대기업 구조조정은 그 규모나 사회적 파급효과를 따져보면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나서기가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대기업 하나가 구조조정이 되면, 거기에 딸려있는 수많은 중소기업까지 어려움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기업 입장에선 좀비기업으로 지목되면 대규모 인력감축을 비롯한 강력한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한다. 은행은 대손 충당금 부담을 져야 하고 금융당국은 관치 논란을 무릅쓰고 이 모든 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감시·지도해야 한다. 어디하나 편한 데가 없다.
그래서 금융당국이 고심 끝에 꺼낸 카드가 수시평가와 유암코, 여신 선진화 테스크포스(TF)팀이다. 은행의 의견을 십분 반영해 관치 논란을 피해가는 한편, 옥석가리기의 객관성을 높여 기업의 반발을 무마하고 싹수 있는 기업은 살리겠다는 복안을 내놓은 것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 대기업 신용위험평가를 완료했음에도 수시평가를 도입해 한 번 더 대기업 옥석가리기 작업에 돌입했다. 11~12월까지 진행되는 신용위험평가에서는 경기 전망 등을 담은 선행지표를 종합적으로 참고해 좀비기업 여부를 가릴 방침이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4일 오전 서울 금융위원회 기자실에서 금융개혁 추진현황 및 향후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