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부문 개혁의 일환으로 금융공기업부터 성과제를 이식하려 하자 기업은행 직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국책은행이라는 이유로 기업은행을 본보기 삼아 은행권에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는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기업은행 직원들은 임금피크제, 복지혜택 삭감에 이어 이제는 임금체계까지 무너지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17일 금융권 관계자들은 금융당국이 정략적으로 추진중인 '은행권 호봉제 임금 개편'에 기업은행이 또 한 번 첫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공공성이란 명분을 앞세워 기업은행에 민감한 제도를 먼저 이식할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앞서 기업은행 같은 금융공기업부터 성과주의 문화를 확대하고, 다른 민간 금융사도 이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성과주의 세미나에서 성과주의 도입에 반대하는 배너를 들고 있다.
사진/금융노조
지난 12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 공기업이 선도적으로 성과주의를 도입해 민간 금융사가 자발적으로 성과주의를 도입·확산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기업은행은 기획재정부 지분율이 50%가 넘는 국책은행으로, 임 위원장이 말한 금융 공기업 중 한 곳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민간이 주주로 있는 시중은행과 달리 기업은행은 정부 지분이 많이 들어간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의 압박이 더 클 것"이라며 "만약 기업은행이 성과제를 확대하면 다른 은행들 임금체계가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기업은행을 모범 케이스로 만들려는 시도가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 금융 공기업 복지 축소 논란 때도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이란 이유만으로 정부로부터 먼저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지난 2005년 당시 기업은행은 임금피크제 논의가 무르익기 전부터 금융 공기업이란 이유로 임금피크제를 시작하기도 했다. 신한은행, 농협은행, 한국씨티은행이 내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시작하는 것을 감안하면 10년이나 일찍 임금피크제를 적용한 것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공기업 자체를 탄압하는 꼴이어서 이번에도 기업은행이 타깃이 된 듯 하다"며 "우리만 매년 희생양이 되는 것 같아 직원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악화되자 기업은행지부는 공식 성명을 내고 총파업을 단행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기업은행지부는 "정부는 금융개혁의 탈을 쓴 노동개악을 당장 멈춰야 할 것"이라며 "기업은행을 또 다시 희생양으로 삼겠다면 기업은행 1만 조합원은 지금 당장 금융노조와 함께 총파업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총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내년 봄 산별중앙교섭에서 사측 대표와 성과제 관련 논의를 진행할 방침이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