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무부장관은 이러면 안 된다. 법무부장관은 시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협박하는 자리가 아니다. 법무부장관은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 인권과 안전을 보장해 주는 자리이다. 법무부장관은 대한민국의 인권과 법무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자이다. 시민의 권리행사를 보장해주고 더 많은 권리를 누리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잘 정착시키도록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협하거나 정의와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이번 11월 14일 집회를 두고 법무부장관은 다음 세 가지를 순서대로 말했어야 했다.
첫째, “시민들의 집회·시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겠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이고 민주사회의 기초이기 때문에 원래 자유롭게 행사되어야 한다. 시민은 정부를 비판할 자유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번 집회·시위는 원칙적으로 정당하다.
둘째, “집회·시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불편함은 정부는 용인할 것이며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들도 참아 주실 것을 요청한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다른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한다. 이 불편은 헌법상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시민 여러분들이 참아주어야 집회·시위의 자유는 보장된다.
셋째,“정부와 법무부는 이번 집회·시위를 평화적으로 끝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약속하며 정부는 최대한 자제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평화적 집회를 위해 집회 주최자들에게도 협조를 당부한다. 필요하다면 집회의 평화적 운영을 위해 집회 주최자들과 논의하고 싶다. 다만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법에 의하여 처벌될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드린다.”
이쯤 되어야 민주사회의 격조 높은 법무부장관의 담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 보장, 정부 자제, 협조 당부, 법적 처벌 최소화를 순서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하는 정부의 모습이다. 그리고 시민에 대한 예의이다.
그러나 법무부장관은 집회 전부터 이번 집회를 불법집단행동으로 몰아붙이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할 것’임을 밝혔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협조를 당부하기 보다는 ‘불법 시위를 조장·선동한 자는 끝까지 추적, 검거해 사법조치하겠다’고 협박했다.
실제로 집회가 끝난 후 법무부장관은 담화를 발표해 이번 집회·시위가 폭력시위라고 규정해 버렸다. 1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 중 절대다수가 평화적으로 의사를 표현했다는 사실, 시민과 노동자, 농민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 경찰의 과잉대응은 문제 삼지 않고 오로지 폭력시위만을 강조했다. 국가가 입은 손해도 청구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연로한 농민에 대한 사과나 관심표명은 없었다.
시위대와 경찰이 직접 부딪히는 폭력의 현장에서는 누구나 감정이 격해진다. 서로가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경우와 같이 사람의 목숨이 위험해지기도 한다. 이 현장에서 경찰과 공권력은 일방적으로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대응할 수도 있고 당연히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공권력이 특별한 권력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권력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존재한다. 시민의 자유를 침해할 때에는 엄격한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만일 공권력이 잘못 행사되면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권력이 정당성을 지킬 때 정부와 공권력은 시민을 설득할 수 있다. 시민을 설득하는 힘은 몽둥이가 아니라 권력의 정당성에서 나온다.
법무부장관은 법률을 통하여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질서 위주의 법치주의는 필연적으로 폭력과 가깝게 된다. 그리고 권력의 요구에 따라 법률이 운영된다. 이런 법치주의를 폭력적 법치주의, 권력의 법치주의라고 부른다.
법률은 정의로워야 한다. 법률은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데 복무해야 한다. “정의로운 법이 있어 권력마저 그 아래 거느릴 수 있을 때,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법의 이름으로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와 평등, 인간으로서 존엄을 누릴 수 있을 때 그때가 참 민주사회이다.” 지난 11월 18일 별세하신 조준희 변호사의 말이다. 이런 수준의 법무부장관을 우리는 언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