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은 원래 유럽 전설에 나오는 이마에 뿔이 난 흰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창업 10년 이내에 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넘어선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용어로 더 많이 쓰인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고향인 미국 실리콘밸리가 전통적인 유니콘의 고향이었지만 요즘에는 유럽이 제2의 유니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포브스는 올해 유럽 스타트업에 대한 총 투자금이 100억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투자금 70억달러 보다 50%가까이 증가한 금액이다. 지난 5년간 상장한 유럽의 IT 스타트업은 100곳 이상으로 미국보다도 많다. 유러피안디지털시티인덱스2015는 지난달 영국 런던과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스웨덴 스톡홀름을 스타트업 키우기에 좋은 도시 1~3위로 꼽았다. 유럽의 북쪽 변방에 있는 작은 도시인 스톡홀름이 유럽 경제의 중심 베를린을 앞지른 것이다.
스톡홀름은 인구가 채 90만명이 되지 않는 소도시다. 1000만명 이상이 살고 있는 서울의 10분의1도 되지 않는 규모다. 하지만 단위인구당 '유니콘' 탄생 비율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 2위다. 영상통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스카이프와 세계 최대 음원스트리밍서비스 업체인 스포티파이, 게임 마인크래프트로 유명한 모장, 캔디크러시사가를 만든 킹디지털 모두 스톡홀름 출신 기업이다. 와튼경영대는 최근 발간한 '스톡홀름은 어떻게 유니콘 공장이 됐나'라는 보고서를 통해 기존 글로벌 기업의 성공을 바탕으로 한 투자와 정부의 앞선 인프라 정비, 열린 기업문화 등이 스톡홀름에서 2만2000여개의 IT 스타트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분석했다.
◇'스포티파이·스카이프·캔디크러시'의 고향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스톡홀름에서는 한해 전보다 338% 증가한 7억8800만달러(9134억원) 규모의 벤처 자금지원이 이뤄졌다. 기업이 비공개로 조달한 사모투자 자금을 제외한 금액만 이 정도다. 스톡홀름은 유럽 IT기업에 투자한 해외직접투자(FDI)의 15%를 빨아들였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의 IT대기업은 물론 세콰이어캐피탈과 클라이너퍼킨즈코필드앤바이어즈(KPCB) 등 유명 벤처투자펀드도 스톡홀름을 찾고 있다. 와튼경영대는 "유명 기업의 투자유치 성공이 스톡홀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더 많은 돈을 끌어오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스웨덴 최고이자 유럽 최고의 유니콘은 스포티파이다. 전 세계 총 사용자 6000만명, 유료 사용자 1500만명을 보유한 스포티파이는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스트리밍시장의 49%를 장악하고 있다. 올 6월 업계 거인인 애플이 스트리밍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스포티파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애플뮤직 발표 직후 5억2600만달러 규모의 자금조달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기업 가치를 85억3000만달러로 끌어올렸다. 스웨덴 대형 통신사 텔리아소네라가 지분 1.4%를 취득하며 1억150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밸리기포드, 랜즈다우너파트너스, 링켈버그캐피탈이 참여했다. 투자주관사인 골드만삭스도 글로벌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했다.
스포티파이에 앞서서 길을 닦아놓은 스타트업으로는 스카이프와 킹디지털 등이 있다. 스카이프는 지난 2005년 이베이에 25억달러에 매각된 이후 2011년 85억달러에 MS로 다시 넘어갔다. 이는 MS의 기업 인수 사상 최고가였다. MS는 올초에는 마인크래프트로 유명한 스웨덴 게임회사 모장도 25억달러에 인수했다. 캔디크러시사가를 만든 킹디지털은 현재 아일랜드로 본사를 옮겼으나 원래 스톡홀름에 기반을 둔 회사였다. 캔디크러시사가의 흥행 잭팟에 힘입어 지난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다. 지난 11월 초에는 콜오브듀티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을 보유한 미국의 게임개발사 액티비전블리자드가 59억달러에 킹디지털을 인수했다.
캔디크러시 시리즈로 유명한 모바일 게임회사 킹디지털도 본래 스웨덴 스톡홀름에 출발한 스타트업이었다. 사진/로이터
이 밖에도 최근 독일로 이전한 오디오스트리밍서비스업체 사운드클라우드가 자금조달을 통해 기업가치를 7억달러로 높였으며 스팸전화방치 앱인 트루콜러도 KPCB와 세콰이어캐피탈 등의 투자를 받았다. 지난 8월 투자를 받아 기업가치를 기존의 두배 규모인 22억5000만달러 수준으로 키운 모바일 지급결제업체 클라나는 미국 진출을 준비중이다. 핀테크업체 아이(i)제트리와 이커머스회사 틱테일 등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정부의 앞선 인프라 투자·수준높은 IT교육
엑제키엘 에르난데즈 와튼경영대 교수는 "스웨덴은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인적, 사회적, 교육적, 기업차원의 인프라를 두루 갖춰왔다"고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정부의 앞선 인프라투자다. 마틴 칼스-월 스톡홀름경영대 회계학 교수는 "앞서 큰 성공을 거둔 스웨덴 다국적기업들이 많은 세금을 냈고 이는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인프라 투자에 사용됐다"며 "스타트업과 테크허브는 무에서 탄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톡홀름에는 이미 지난 1994년 정부주도로 세계 최대 규모의 광대역통신망이 구축됐다. 통신망은 스톡홀름에 있는 기업 100%, 가정 90%를 포함했다. 94년에는 PC 소비세를 면제하면서 PC 보급률을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 현재도 스톡홀름 인구의 92%가 일주일에 한번 이상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와튼경영대는 "스톡홀름에서 가장 흔한 직업은 프로그래머로 근로자들은 5명중 1명꼴로 IT기업에서 일 한다"고 설명했다.
적은 인구와 잘 보급된 인프라는 스톡홀름을 IT기술의 테스트베드로 만들었다. 이수정 코트라 스톡홀름무역관은 스웨덴의 게임 산업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스톡홀름은 자체 시장이 작기 때문에 테스트마켓으로 적당하다"며 "만일 성공하면 계속해서 밀고 나갈 수 있고 실패할 경우에도 바꿔서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적은 인구는 기업의 해외진출을 부추기는 요소기도 했다.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잡기 때문이다.
무상으로 제공되는 대학교육은 수준 높은 IT 프로그래머를 양산하는 밑거름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스타트업 클러스터도 젊은 기업가의 창업을 뒷받침한다. 스팅(STING)은 스톡홀름의 대표적인 대학 기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다. 지난 2002년 KTH와 연계해 만들어진 스팅은 매년 20~25개의 스타트업을 키우겠다는 목표로 스타트업에 다양한 인적·재무적 네트워크와 공동업무공간 등을 제공하고 있다. 설립 이후 153개의 스타트업을 키웠다. 이중 108개 회사가 계속 영업 중이고 6개 회사는 인수됐다. 그 동안 이들 스타트업에 대해 2억8600만유로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다. 지난해 기준 매출은 1억200만유로로 이중 84%가 해외 매출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스웨덴 특유의 문화도 큰 역할을 했다. 직장생활과 출산 및 육아를 병행하는 데에 무리가 없는 환경이 양질의 여성 인력을 유치하는 것은 물론 개인 삶의 가치를 중시하는 남성 직원을 끌어오는 것에도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은 여성 및 모성(자녀를 둔 여성) 취업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아이가 있는 여성 10명중 7명이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정부가 낮 시간에 필요한 보육비의 상당부분을 지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남성들의 육아휴직도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페이스북이나 애플 등이 여직원에게 복지차원으로 제공하는 난자냉동 시술 등은 스웨덴에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이케아와 H&M의 성공으로 확인한 스웨덴의 디자인 감성, 작은 도시라는 특징을 바탕으로 생겨난 강한 팀워크, 직장 내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함께 묻고 답할 수 있는 오픈마인드가 정책돼 있는 점 등도 스타트업 육성에 도움이 되고 있다.
에르난데즈 교수는 스톡홀름이 스타트업 허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스톡홀름만의 특징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도시가 실리콘밸리가 되길 바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실리콘밸리는 독특한 역사적, 사회적 환경의 산물로 그 특유의 환경 때문에 다른 곳으로 대체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각각의 도시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강점을 기반으로 그 특징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 경우에만 타인이 쉽게 모방하지 못하는 지정학적, 지역적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