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이 여야 '1 대 1' 맞대결이 아닌 '1 대 다'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21일 신당 창당을 선언하며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연대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안 의원 탈당 이후 추가 탈당 움직임도 계속되면서 야권 재편이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안 의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이 원하는 정권 교체를 하겠다고 약속드린다"며 "내년 2월 설날(8일) 전에 신당의 구체적인 모습을 국민들께 보여드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신당은 안철수 개인의 당이 아닌 낡은 정치 청산과 정권 교체에 동의하는 범국민적 연합체가 될 것"이라며 "이번 주부터 창당실무준비단을 가동하겠다"고 했다.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지 1주일여 만에 나온 창당 선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최근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김동철·문병호·유성엽·황주홍 의원이 함께했다.
안 의원은 '정권 교체'라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은 '국민성공시대'를, 박근혜 정권은 '국민행복시대'를 약속했으나 대기업과 부자만 성공하고 행복해졌다"며 "삶이 힘겨운 보통 사람들, 불공정한 세상에 분노하는 젊은 세대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도 참았고, 오늘도 참고 있지만 내일도 참을 수는 없다. 행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며 "우선 경제 정책이 가장 중요하고, 그 중심에는 공정성장론이 담길 것"이라고 했다.
새정치연합과의 선거 연대에 대해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안 의원은 "국민은 낡은 정치를 바꿔 달라고 요구한다"며 "혁신을 거부한 세력과는 전혀 통합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부분적 후보 단일화 또한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을 비롯해 박주선 의원 등 호남 신당 세력과의 연대는 "기본적으로 열려 있다"면서도 "새로운 시대 요구와 정치 목표 등을 분명히 한 후에야 가능하다"고 했다.
내년 총선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졌다. '안철수 신당'이 독자 노선을 내세우면서 야권 표가 갈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안 의원은 "새누리당이 200석 이상을 가져가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막을 것"이라며 총선 목표로 개헌 저지선(100석) 확보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박빙 승부가 펼쳐지는 수도권에선 여야 후보 1명씩 맞붙는 구도가 아니면 야권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날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병헌 최고위원이 꺼낸 "야당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은 진리"라는 말에도 이같은 위기 의식이 담겨 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지금 시점에선 연대 불가론을 펴는 게 당연하다. 새정치연합과의 연대 얘기가 벌써부터 불거지면 세력을 확장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최대한 지지 기반을 넓힐 때까진 독자 노선을 걷겠지만, 막판에 야권 후보의 공멸이 우려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후보 단일화 고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이 일으킨 바람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이날 공개한 '내년 총선 정당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 38.2%, 새정치연합 25.7%, 안철수 신당 16.3%였다. 리얼미터는 "안철수 신당이 광주·전라(30.7%)에서 1위를 기록했고, 40대·중도층 등에서 강세를 보였다"며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지지층 일부가 안철수 신당으로 이탈했다"고 분석했다. 새정치연합 중진 의원들의 심상찮은 분위기도 감지된다. 김한길 전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고민이 점점 더 깊어간다"는 글을 올리며 탈당 가능성을 내비쳤다. 3선의 박영선 의원도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은 모든 상상이 가능한 시점이다. 여러 가지 창조적 파괴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당 창당을 선언한 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의원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황주홍·문병호·안철수·김동철·유성엽 의원. 사진/뉴스1